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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Nov 12. 2022

더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

같은 연애, 다른 슬픔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가 이별을 앞에 두고 내게 남긴 말이 있다.


“원래 남녀 사이의 이별이 이런거야. 아무 것도 안 남는거야. 너는 처음이라서 유난히 힘든 것 뿐이야.”


그의 말대로 나는 유난히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이별한 뒤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사는 내내 모든 것이 아팠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울었다. 꿈에라도 나타났던 밤이 지나면 온 마음이 쓰라렸다.


밥을 먹는 일이, 정해진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오지 않는 잠을 비참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 괴로웠다.


왜 나만 힘들까. 어떻게 너는 그렇게 금방 괜찮아 질 수 있었을까. 붙들어 놓은 채 따지고 싶었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허무하리만큼 그와의 관계에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서로를 알기 전으로 애써 돌아가야 했다. 이제부터는 나와 그가 남으로 지내야 했으므로.


두 번째 이별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의 말에 반기를 들고 싶어졌다. 두 번째도 힘들었다. 처음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 이후로 찾아 온 나의 모든 이별이 힘들었다.


이별은 학습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에도 나는 처음처럼 울고, 처음처럼 마음을 다쳤다. 처음처럼 무너졌고, 처음처럼 다시 서서히 일어섰다.


그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덜 힘든 이별이 온 것은 말하자면... 논외의 것이었다.


상대의 마음이 나보다 큰 관계를 끝낼 때, 나는 정말 이별이 ‘괜찮게’ 느껴졌다. 짧게 울고 짧게 슬프고 짧게 공허하다가 금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게 남은 것이 그저 미안함과 죄책감에 불과했을 때. 나는 그 이별이 쉬웠다.


내가 훅훅 털고 일어서는 동안 상대는 여전히 주저 앉아 있음을 깨닫고는 가슴이 얼얼했지만 그 이전의 이별처럼 힘들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첫 이별이라서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좋아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많은 이별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이 아니라, 나를 덜 좋아했기 때문에 덜 힘들었던 것이다.


마음이 시리도록 처절한 사실이었다. 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같은 마음으로 좋아해줄 수 없을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같은 온도로 사랑해주지 않을까.


마음을 계량화해서 함께 맞춰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안온할까.


그렇다면 아무도 혼자 울지 않아도 될텐데.


파도처럼 슬픈 이별도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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