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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an 28. 2021

사랑은 사랑, 결핍은 결핍

필요한 물건을 사러 상점에 들렀다가 다정한 부녀를 만났다.


젊고 수더분한 아버지는 이제 네 살이나 됐으려나 싶은 아이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것이 한없이 좋아보였다.


내 미래에도 저런 풍경이 올까 싶어진 것이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다가 마음 한 쪽이 움찔댄다.


나에게도 저런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문득 찾아 온 감상으로 마음이 슬퍼졌다.


나는 그새 그 아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아이 삶의 몫으로 떨어진 것 중 하나인 다정한 아버지. 나도 그것을 가져보았다면, 그랬더라면.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나처럼 어느 한 곳이 결핍되어 있는 캐릭터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꼭 그런 등장인물들은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밝고 활달하고 능력있다.


그들은 왜 하나같이 어느 순간 완벽해져 있을까?


어떻게 근사한 어른으로 자라나서 남에게 또 다른 열등감을 안겨 줄 수도 있게 됐을까?


드라마 '또 오해영'의 예쁜 해영(전혜빈 분)이도,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정민(이청아 분)이도.


온통 불우했던 그들의 삶은 어떻게 근사해졌을까? 못하는 것도 없이 완벽해졌을까?


드라마 속 다른 인물들은 불우한 그들이 기어이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웃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온전한 가정 속에서 자라지 못한 예쁜 해영이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입으로 이런 말을 듣고야 말았다.


"나 걔 불쌍해서 못 버려. 부모한테 버림받고 나한테까지 버림받아야 돼? 버림받을까 봐 울면서도 웃는 그런 애를 어떻게 버려?"


남자의 어머니가 그건 사랑이 아니고 측은지심이라고 하자 남자는 측은지심이어도 된다고 말한다.


불우한 사람들은 티없이 맑게 웃어도, 모든 일에서 최고의 능력치를 발휘해도, 짙은 응달이 서린 시선을 벗어나질 못했다.


하물며 누군가는 쓰레기 혹은 똥차라고나 부를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실연을 당해도 결국은 불우한 환경 때문이라고, 그것이 저 사람들을 저리도 목 마르게 한 것이라고 낙인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서 나이차가 한참 많이 나는 남자를 만난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서 어머니와 닮은 여자를 찾는다. 등 각색도 변형기출도 다양하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게도 사랑은 뜨겁고 찬란하고 유일하게 왔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듯 차갑게 부패되어 떠났다.


남자와는 뜨겁게 연애하다가도, 헤어질 수 있다.

지나가다 유독 화목해보이는 가족을 보면 마음이 씁쓸하게 아려온다.


사랑은 사랑, 결핍은 결핍.


나는 나의 결핍과 또 다른 사랑을 구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가끔씩 적응이 안되는 것은 있었다.


너무 투명한 순정으로 내게 다가오는 사랑. 그 사랑이 넘실대는 눈빛이 내내 식지 않는 사람.


나를 왜 좋아해요? 하고 물으면, 그냥이요. 라고 대답하는 것.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얼굴에 훤히 감정이 비치는 것.


목적도 없이, 까닭도 없이 그저 내가 좋다고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순정에는 하릴없이 약해진다.


나의 존재를 사랑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면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사랑은 받아 본 사람만이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정의 어느 영역 쯤을 가리키는 건지 슬프지만 대강 짐작하게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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