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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Oct 09. 2020

혐오하는 나의 연인

사랑과 연애와 혐오

우리의 인생이 한 계절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보자.


1,2년의 시간은 어느 정도의 부피를 차지할까?


봄에 돋아난 낱장의 푸른 잎. 한여름에 조용히 내리는 비. 생명력 없이 구르는 돌.


한 계절에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분,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 때문에 언젠가의 사람들은 죽고 싶어지곤 한다.


요즘 내가 만난 사람들은, 연애를 통해 사랑과 혐오를 동시에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과거형이기도 하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애증들.


한 사람, A씨가 있다. A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외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나른한 그 나라의 시계 속에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B씨를 처음 만났다.


한국인이 많지 않은 동네였던지라 그들에게 서로는 유일하게 같은 말을 쓰는 존재였다.


한국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인류애와 동질감을 느끼며 둘은 금세 가까워졌다.


낯선 언어들이 나부끼는 곳에서 짧은 한숨만으로도 서로의 정서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


그 것만큼 서로를 끈끈하게 잡아당기는 매개체가 있을까?


A씨는 B씨와 자주 대화를 나눴고, 강한 끌림을 느꼈다.


모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충실한 연인 C씨의 존재를 잊을 수 있게 될 정도로.


짧지만 긴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고, A씨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연인 C씨를 정리하고 새롭게 다가온 인연을 받아들여 보는 것으로.


그렇게 찾아 온 사랑은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 이별통보는 무엇이었을까?


고하기도, 붙잡히기도 쉬운 이별. B씨는 다시 A씨의 곁에 남았다.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사랑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시작한 사랑이니, 누구보다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이 식어가는 속도는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 사람.


공부가, 일이, 운동이, 휴식이, 언제나 나보다 우선인 사람.


같은 타운에 살면서도 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오히려 관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A씨였다.


그 이후로 한참을 같은 연애를 반복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사랑인 지 아닌 지 헷갈리는 연애.


거짓말처럼 냉랭하다가도, 이내 뜨겁게 서로를 안아주는 연애.


그 연애를 지나다 A씨는 문득 깨달았더란다. 그 사람이 실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전 연인 C씨를 버렸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B씨는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자신을 스쳐갔던 전 연인들과 A씨를 비교하는 것은 기본, 다른 이성과 대화만 해도 B씨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B씨가 시작한 것은 가스라이팅이었다.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자꾸만 움츠러들게 하는 것.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의심받고, 답답하고, 억울하던 밤들.


그 밤이 하얗게 새면 이유없이 사과해야 했던 날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남자친구를 버려서.

미안해. 환승이별을 해서.

미안해. 너에게 신뢰를 주지 못해서.


한 사람의 의지로 시작한 관계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는 갑이 되었고 누군가는 을이 되었다.


을이 된 A씨는 자신의 불행을 합리화하며 남은 연애기간을 지냈다.


선량한 애인을 떠난 죗값, 애인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죗값.


나는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아도 돼.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 벌을 왜 B씨가 주어야 했을까?


함께 불나방이 되어 뛰어든 사람에, 왜 한 사람은 손쉽게 방관자가 되었을까?


-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연애는 힘들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지옥이라는 걸 그 때 깨달았습니다. (A씨)


A씨와 B씨의 연애가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축복받을 수 없는 시작점이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필자에게는 ‘환승이별을 당했다’는 이들의 상담이 물밀 듯 밀려오는 시즌이 있다.


봄바람이 살랑 부는 계절, 끈적하고 눅눅한 비의 나날, 센치해지는 10월 즈음, 캐롤이 들려오는 밤거리를 지나는 시점. ㅡ사실은 사계절 전부다.ㅡ


그러나 그 사랑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은 B씨에게 없었다.


A씨는 ‘지옥’같은 연애를 끝내고 비로소 후련해졌다.


-


또, 김 씨가 있다.


김 씨는 3년의 사내연애를 마치고 박 씨와 이별한 지 1년째 된 직장인이다.

둘이 이별하게 된 이유는 박 씨에게 있었다.


그는 박 씨를 ‘여자친구를 감정 쓰레기통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둘의 세계에서 박 씨는 여자친구인 김 씨의 휴대전화를 언제든지 검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성이 한 명이라도 끼어있는 단체 카톡방은 모두 ‘나가기’ 당했다.


중학교 동창이며, 오랜 이성친구들까지 모두 잃었지만 김 씨는 이해했다.


그러나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도무지 이성을 찾지 못하는 박 씨를,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이성의 전화번호를 다 옮겨가 하나하나 확인하고 차단하는 박 씨를,

걸핏하면 전 여자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박 씨를,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이별을 고했다.


이별을 고한 지 1년째지만 박 씨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친하게 지내는 회사동료들에게 “나 김 씨 남자친구니까 거리를 두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다.


김 씨가 문란하다, 돌싱이다... 등 실재하지도 않는 소문을 내며 사내에서 철저히 고립시키고 있다.


참다 못한 김 씨가 대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박 씨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해. 하지만 네가 3년이라는 시간을 우습게 여기고 나한테 이별을 고했다는 게 괘씸해.”


김 씨는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필자 역시 그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어느새부터 이별할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요소 중에 ‘안전’이 끼어있다.


오랜 시간 연인이었던 만큼 집 주소며, 김 씨의 본가 주소까지 박 씨가 알고 있는 탓에 최대한 그의 눈에서 멀어지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김 씨가 가장 염려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 해꼬지를 당하면 어쩌죠? (김 씨)

폭력적이고 분노가 많은 사람.


그 사람의 사랑인지 증오인지 모를 감정이 김 씨를 여전히 괴롭게 하고 있다.


-


사랑과 혐오, 애정과 증오.


각자의 끝단에 서 있을 듯한 감정이 실재할 수 있는 곳은 ‘연애’ 뿐이다.


그 끝에서 누군가는 도망쳐 나왔고, 누군가는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은 메일을 주고 받은 A씨와 김 씨, 모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쏟아졌다가 거짓말처럼 그쳐버리는 한 계절의 장마가 있다.


그 비는 다가올 가을에 눈부신 수확을 준다.


분명한 것은 나를 괴롭히는 연애에서 벗어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지옥인 연애는, 더이상 연애가 아니다.


사랑과 혐오가 같은 선상에 있는 한 그 연애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연애는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당신이 지금 연애 중에 힘들다면 얼마나 힘든지 보다도, 당신이 어째서 힘든지를 먼저 떠올려 보아야 한다.


연애가 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연애가 나를 위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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