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어 유희

마빡이는 알고 있을까, 네 발 소녀의 고무줄놀이를.

-목청껏 부르고 힘껏 돌리면 깍두기 시켜줄게.

by Sabina

엽편[葉篇]-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 대개 인생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리는데 유머, 풍자, 기지를 담고 있다


소아마비[polio]-소아에게 발병하여 후에 수족 마비의 후유증을 남기는 병,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아 열병 후에 얻게 되는 마비.



강인봉이 작사, 작곡하였고,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른 영화《선생 김봉두》의 극 중 노래. 영화 자체보다도 개그콘서트의 코너였던 마빡이에서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쓰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

https://youtu.be/fKqty5VL_DQ


1974년, 여섯 살 정미는

유유자적 날아가던 새가 자기 집 변기처럼 볼일 보고 가는 새 똥이 걸러지지 않는 처마 아래,

삐걱거리는 마른나무의 틈새가 쩍쩍 갈라져 쥐가 지나가는 것이 다 보이는,

그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크면 다 안다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 어린아이가 알 수 없으니 하늘에 대고 습관적으로 말했다지요.


"친구랑 놀고 싶어요..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고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즐거우면 하하하 웃을 수 있는 인생을 알 수없으니

그때는 기도만 했답니다.


"제 기도가 하늘에 닿을까요?"


소아마비 네 발의 소녀는 보드라운 솜털 가득한 겨드랑이에 목발을 들이밀 수가 없었어요.

사람의 온도와 향기가 없으니 징그러운 친구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겨드랑이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정미는 목발 짚는 것을 미루고 미뤘지요.

그럼 어떻게 걸었을까요?

밥을 먹고 도구를 잡고 직립 보행할 때 돋보인다는 하늘하늘 흔들리는 손을, 누렇게 변해있고 다 닳아서 헤어진 오빠 운동화에 장착하고 보란 듯이 네 개의 발로 걸었답니다.

언뜻 보면 직립 보행하던 오랑우탄이 땅의 먹잇감을 찾을 때나 행동한다는 엉금엉금 네 발, 그 모양새랍니다.


정미네 집 앞은 아이들이 모여노는 아지트였어요.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 가~ 어어! 너 줄 닿았어! 이제 우리 편 할 차례야!"

KakaoTalk_20201109_143329942.jpg

마루 끝에서 걸터앉아 듣자니 고무줄놀이 노래가 다음 곡으로, 또 다음 곡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아, 노래가 끝나가요.

오빠 운동화 끈을 손에다 아주 단단히 매고 철커덩 철커덩 소리 나는 철제 대문을 있는 힘껏 밀고 소리쳤어요.

얘들아! 나 깍두기 시켜주라!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깍두기라고 해요.

어릴 때는 의미를 몰랐을 거예요.

인생 조금 안다고 자존심 날 세울 때는 [깍두기] 김치만 봐도 소름 끼쳤고요,

빌딩 숲 우거진 호화로운 신도시에서 변방 소시민처럼 고개 숙이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깍두기] 같아서

네 편 내편 할 것 없이 무조건 내 편으로 만들었고요,

인문학을 논하고 철학을 이해할 때는 목청껏 소리 높여 힘껏 힘주며 말했어요.

"깍두기 인생이 화두가 되면 주인공이 됩니다. 절대 무시하면 안 됩니다."


부모의 갈등을 지켜보던 00 이는 괴로울 때마다 팔에 자해를 했어요.

저는 그 아이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나는 네 편'을 놓지 않았지요, 자존감이 생기고 지난 과거쯤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되자 숙녀가 된 아이는 오선 줄 가득한 팔뚝에 문신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그림을 잘 그리는 그녀가 직접 도안을 그리고 오선 줄 가득한 팔뚝에 아름다운 타투를 입혔답니다.


숙녀가 된 그 아이는 이제 타투이스트(tattooist)가 꿈입니다.


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나, 조직이나 단체 따위의 내부에서 소수파를 이르는 말을 비주류라고 한다죠.


어릴 때부터 잘못된 방식으로 훈육을 하거나, 언행불일치를 보이는 어른을 만나면 똑 부러지게 대항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반항으로 보였겠지만요.

몸이 불편해서 이쪽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깍두기 인생을 살았던 제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은 중학교 반장선거 때입니다.

학기 초부터 우스개 소리 날리고 불량한 학생 나무 목발로 휘둘러 버리니 이미 반장이 되었는데요.

희끗희끗 지긋해 보이는 인상 좋은 담임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은,

"장애인은 안 된다."

기동력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반장이니 쿨하게 웃으며 돌아서는데 느린 걸음 뒤에 사족을 붙이더군요.

"감히 어디를 끼려고 해"


끼고 못 끼는, 네 편 내편, 편 가르기 발언으로 들렸습니다.

반장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능력 여부를 말해줘도 되고, 양해를 구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죠. 돌아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 상담학에서 쓰고 있는 대화 기술 용어로 [되감기]로 리마인드 시켜드렸습니다.

"장애인은 임원단에 끼면 안 된다는 겁니까?"

결국 반장도 되지 못했고, 인상 좋은 선생님이 내 앞에서만 인상을 쓰는 불편한 관계로 1년을 보냈답니다.


트라우마라고 하죠.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 깍두기, 비주류로 아우라를 만들어 놓고 비합리적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가늠해보면 추억팔이 정도로 먼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현실입니다.


유행하는 주류에 편승하지 않아서 비주류라고 일컬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요?

이 편 저 편에 껴주기 어려워서 [깍두기]라고 표현했던 인물이 비주류에서 제대로 흐름을 타는 주류가 되어 눈앞에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개그 콘서트에서 마빡이 연기를 했던 정종철은 이마를 수십 번씩 두드리며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지(막까지)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어느 날부터 TV프로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더니 이제는 요리사 정종철이 되어서 등장했죠. 영락없이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 같지만, 예전 인터뷰 내용을 보니, 그의 마음은 시대를 이끄는 주류였습니다.


Q.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장애 어린이와 함께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등 뜻있는 일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 ‘신앙인 정종철’과 ‘개그맨 정종철’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요?

A. 목사님께서 ‘티 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너무 티 내는 것 같네요. 저는 신앙인과 실제 생활 사이에서 고민하고 싶지 않아요. 교회에서는 ‘권사님’ ‘집사님’하면서 세상 속에서 살 때는 사람들과 타협하고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 때 오히려 간접적인 전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개그맨들이 저보고 ‘정 목사’라고 불러요. 잔소리 많이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정종철이 크리스천인 줄 아는데 제가 밖에서 허튼짓 못하죠. 저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렇지 않기를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길가에 휴지를 버려도 사람들이 다 제가 크리스천인 줄 아니까요.

깍두기와 비주류를 양산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비주류가 주류가 되고, 주류가 비주류가 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고 인생인 것을.


오빠 운동화를 손에 장착한 비장한 어린아이는 소리쳤지요.

얘들아! 나 깍두기 시켜줘라!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미야, 고무줄을 잡고 앉아서 힘껏 돌려! 그리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줘. 그러면 깍두기 시켜줄게."


동네가 떠나가라 불렀습니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인지 고향 땅 넓이를 1시간이 넘게 외쳐주니, 기회가 왔습니다.

"정미야, 너도 해봐"


알았을까요?

힘들게 얻은 기회, 네 발이 고무줄에 엉키지 않게 하려고 마치 비보이가 다리 찢어가며 비보잉하는 몸짓을 흉내 냈던 그 아이가 고등학교 창작 무용에서 목발을 새의 날개로 형상화하고 1등을 얻어낼 것이라는 것을.

KakaoTalk_20201109_181133626.jpg

이마를 하도 두드려서 이마가 빨개져도 관객이 웃으면 행복하다던 마빡이는 알았을까요?

그 노래를 따라 먼 추억을 따라가고 그 추억 속 깍두기 장애인이 희로애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살고있는 것을.


네 발 고무줄 소녀는 알았을까요?

깍두기 시켜달라고 외친 그때 그 용기가, 비주류라고 고개 숙인 [깍두기] 인생을 품게 될 줄을.


지금도 고단하고 힘든 삶을 안고 오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목청껏 부르고 힘껏 돌리면 깍두기 시켜줄게요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힘을 내세요.

눈에 띄지 않아도 그대는 빛이 납니다.

깍두기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깍두기, 비주류에서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당신은 주류입니다.

고민하고 사유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졌다면

당신은 주인공입니다.

제가 지금 주인공으로 살아가듯 말입니다.




언어유희: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깍두기 인생이 깍두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식당에 가면 외친답니다.

"아줌마! 여기 깍두기 더 주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유희에게, 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