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 호형하지 못하는 이 땅의 자식들에게 고하다.
현직 버스기사가 책을 출간했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함으로써 그가 머무는 세계를 드러내고 타인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는 다른 작가의 추천사를 읽을 때, 책 첫머리에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큰 코 다쳤다.
이해, 공감, 소통... 모호한 단어, 그러나 결국 사회를 지탱해주는 감각의 언어가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 책에서 풀어헤쳐져 있었다.
유일무이 긴 직사각형 버스에서 별장을 소유해야 가질 수 있는 통창 유리 앞에서 가슴보다 넓은 핸들을 잡고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었다. 그리고 하루 열여덟 시간을 운전하면서 따뜻한 손님, 진상 손님의 외모와 언어를 천천히 흡수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버스 기사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미덕이 있다. 어찌 보면 [버스사용설명서]를 친절하게, 유머러스하게 가끔은 독설로 풀어낸 지침서로 볼 수 있다.
그가 머무는 세상을 압축해 놓은 버스 안의 이야기는 까칠까칠한 수염이 언뜻언뜻 보이고 금테 안경이 코 끝에 걸쳐져 있는 책에 몰두하고 있는 내 서랍 속의 철학자와 닮아있었다. 철학자의 안경테가 코끝에서 툭 떨어지고 다시 손 끝으로 안경을 위로 올려 다시 쓸 때, 이 책은 [버스사용설명서]가 아닌 따뜻한 위로가 넘치는 [인문학]이 되어 있었다.
운전을 하면, 신호를 위반하는 버스를 보면서 겁나게 욕했다. 여자 운전사라고 얕보일까 경쟁하듯 버스와 나란히 달리고 버스를 추월하고는 했다. 심지 고약한 운전사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버스기사의 마음을 얼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형차는 신호를 잘 깐다. 탄력이 죽기 때문이다. 섰다가 이 단, 삼 단 기어 넣고 속도를 다시 높이려면 연료도 많이 들고 몸도 지친다. 커다란 보트를 막 노를 저어 나아가는 느낌이다.(...)
하루는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손을 저어주고 있었다. 어린 학생이 손을 저어준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자발적으로 탄력을 죽이며 다가가 국군의 날 도열하는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멋지게 붙여줬다.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바이바이 하며 수줍게 웃어주는데 정말 일할 맛 났다. 그 아이에게 퍼포먼스를 선물할 수 있었던 나의 유연함도 좋았다. 종점에 도착해 차 바닥을 닦으며 그 아이의 '수줍은 인문학'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지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곱씹어보는 그의 글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남자로, 가장으로 살아가는 회환이, 문장 구석에서 속울음으로 터져 나올 때 느꼈다. 이 책은 [버스사용설명서]가 아니다.
미국 뉴저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23번 버스를 모는 시내버스 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독립영화가 있다. [패터슨]
반복적인 일상에서 시를 쓰고 세상을 시처럼 바라보는 가장의 이야기인데, 그 영화 자막에서 본 구절이 허혁과 닮아있었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
그냥 버스기사인 허혁은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언어로 재 창조하고 여자가 볼 수 없는 남자의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피력했다.
독설은 철학적 일침이었고 소소함은 유머를 장착하고 있으니 한 권의 책을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큰 코 다쳤다.
슬픈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자가 눈물을 흘릴 때 의아했다. 자식 잘되라는 이유로 고정관념 가득한 꼰대 짓을 할 때 화가 났다. 나는 남자를 잘 몰랐다.
[아버지]
아버지, 그날 밤 왜 그렇게 저를 때리셨어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버지가 구두도 안 벗고 들어와 누워 계시기에 구두를 벗겨드리려고 한 것뿐인데 갑자기 일어나 왜 그렇게 저를 때리셨어요. 큰 아버지가 선거에서 떨어져 집안 다 망하게 생겼다면서 왜 그렇게 제 뺨을 때리셨어요. 한참을 때리다가 불을 끄고 오라고 하셨어요. 도망치고 싶었는데 도망치다 잡히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불 끄고 맞으면 덜 아플 것 같아서 불 끄고 앉아 한참을 더 맞았어요. 너무 무서웠지만 아버지가 때리기 좋게 계속 뺨을 내밀었어요.(...)그런데 그날 밤 왜 그렇게 저를 때리셨어요.
(...)
아버지, 왜 맨날 술 먹고 오셔서 자는 저희들을 깨우셨어요. 뭐가 그렇게 힘드셨어요. 큰아들 훌륭하게 만든다고 왜 맨날 술 먹고 오셔서 자는 저희들을 깨우셨어요. 뭐가 그렇게 힘드셨어요. 큰아들 훌륭하게 만든다고 왜 맨날 술 먹고 오셔서 앞으로 나란히, 바로를 시키셨어요. 왜 맨날 엄마 말 잘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소감을 말하라고 하셨어요.(...) 엄마도 말려주지 않았어요. 은정이하고 저는 키도 못 컸잖아요. 저는 남자라 상관없는데 은정이는 너무 작아서 마음이 아파요. 힐 신고 아장아장 아프게 버스 타고 다니는 거 보면 가슴이 미어져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다 망치셨어요. 아버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드셨어요.
(...)
아버지가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정말 나쁜 놈이에요. 바보 천치 농판 등신이에요.
아......
[아버지]라는 목차를 달고 세 페이지에 걸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썼을 허혁 기사의 그림자에 눈물이 쏟아졌다.
분명 아주 명쾌하게 글을 쓰는 사람인데, 이해와 소통과 공감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써서 따듯하지만 시원한 글이었는데, [아버지]라는 챕터에서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큰 코 다쳤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대목에서 홍길동이가 떠올랐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교과서에서 호부호형의 의미를 외우기 위해서만 접했던 홍길동, 은행에서 내 이름을 쓰는 사인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홍길동, 나는 왜 길동이가 떠올랐을까? 그리고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랐을까?
소설 속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기의 처지를 고민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본질일까? 아버지 홍 판서의 또 다른 첩인 초란이 관상녀와 짜고 자객을 보내 길동이를 죽이려 할 때, 길동은 관상녀와 자객을 모두 벤 다음 아버지에게 하직인사를 올렸다. 그때 홍 판서는 “내가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여 오늘부터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기를 허락하노라” 하며 집을 떠나려는 길동을 붙들었다.
그러나, 길동은 “소자의 지극한 한을 아버님께서 풀어주시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아버님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라며 이별을 선언했다. 말로는 호부호형이 자기의 지극한 '한’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본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홍길동의 지극한 '한’은 ‘집 안’보다는 ‘집 밖’과 관련되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집 안에서 호부호형이 허락되더라도 그의 사회적 성공은 여전히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홍길동의 신분적 굴레는 아버지 홍 판서의 허락만으로 해소되는 게 아니었다. 아마 홍길동은 집을 벗어나 제약이 가득한 세상으로 나가서도 서자의 설움을 지닌 채 살아갔을 것인데 우리는 그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능력자로만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길동이가 '집 안'에서 체득한 아픔을 '집 밖'에서도 아픔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가슴 깊이 억압하고 살아 갔을 텐데 '의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서자로 태어나서 겪은 유년의 결핍이 성인이 되어서 느끼는 사회적 제약으로 이어지고, 성취를 하고 성공을 해도 해소가 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삶, 진짜 감정 담아 호부 호형하지 못했던 길동이의 삶을 심리학에서는 [심적 결정론]이라고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서 [심적 결정론]이란,
“심적 결정론의 원리(principle of psychic determinism)는 인간 행동은 어떠한 것도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은 결코 없다고 하여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인간의 모든 행동은 행동에 선행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데 무의식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고,
무의식의 원리(principle of the unconscious)는 인간의 사고, 감정, 행동을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하며 이런 무의식은 개인의 정신계의 일부로써 개인의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덜 성숙된 소원, 충동 및 욕망들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구성요소들은 의식적인 경험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현실을 오롯이 살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생득적으로 체험한 그림자는 어른이 되어서 표출이 되는데 크게는 병적으로 작게는 가짜 감정만을 표현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빠들에게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그리고 나는 보았다.
마음이 아픈 남자들이 호르몬이 변한다는 나이가 되면 드라마를 보고서야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을.
금요일 밤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가수 헨리는 부모님이 계신 캐나다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차 안에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다는 Nat King Cole의 ‘Too young’을 부르는 부자(父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식들이 보였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아버지]를 안아주고 [아버지]와 노래 부르고 [아버지]와 함께 누워있지 못할까.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아버지에 대한 설움을 글로 풀어내고 술을 먹어야 용기를 내고 돌아가신 산소에 가서 꺼이꺼이 울고 있단 말인가.
독립영화 패터슨에서 시처럼 살고 있는 패터슨이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소소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밥상머리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상추쌈 가득 아버지의 입안으로 건네주는 그 소소함이 행복이라는 것을.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아이처럼 엄지 척 올려주면 등이 굽고 다리가 휜 어머니의 힘줄이 소 힘줄처럼 벌떡벌떡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운전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허혁 작가는 이제 알겠지.
아버지에게 한 풀이하듯 욕을 하고 꺼이꺼이 울고 나서야 아버지가 이해되겠지.
나도 아는데,
백수여서 미안하고 술로 보낸 세월 끝에 간이 망가져버려 더 미안한 아버지가 나에게 원했던 것을 나도 아는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그렇게 자주 불렀어야 했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것은 작지만 위대한 것이고 소소하지만 대단한 것이다.
불러주어야 빛나는 호칭이 있다.
인정해줘야 힘이 나는 호칭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것이 시작입니다. 소소한 아름다움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