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은 나와 다른 것, 내가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이다.
향단이에게 말한다.
"그네를 밀어주거라"
한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밑에 작은 티끌 바람 쫓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춘향전의 문장이 내 눈앞에 풍경처럼 그려졌다.
금요일 밤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엉덩이를 실룩실룩 대면서 춤을 추자 패널들은 귀여운 엉덩이 실룩대고 걷는 다리가 짧은 웰시코기에 빗대어 박나래를 [나래 코기]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웰시코기를 보면 박나래 춤이 떠오르고 엉덩이살 가득한 사람이 걸어갈 때마다 떠올랐다 [실룩실룩]
웃고 있으면 물어온다.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아... 네!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니 기분이 좋아요."
"아... 네."
전달이 됐을까? 나의 기분이.
제주도에서 두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친구는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제주도의 풍경은 가히 천국이어서 입을 떡 벌리고 감탄했다.
마치 내가 간 곳인양,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그녀의 사진을 차용했다.
프로필 사진을 본 제자가 물었다.
"쌤~여행 중이세요? 풍경 멋있네요!"
"그치, 억새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쏘삭쏘삭 하지? 파도가 찰랑찰랑 넘실대고 구름이 실근실근 하지?"
고전소설에서나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의태어를 사용했더니 그 자식 반응이 단번에 뜨거워졌다.
"네? 정말 그곳에 계신 거예요? 어디신데요?"
"사실, 친구 사진 잠시 빌렸어. 가고 싶은 곳이지... 제주도 닭머루 해안!"
뾰족뾰족한 검은 바위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것처럼 보여서 ‘닭머르’라고 부른다는 사진 속 해안의 풍경이 [멋있다]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웠다. 기암괴석이 날카로운 선율을 따라 뾰족뾰족 가슴을 찌르고 파도 따라 흐르는 하늘의 구름은 시간대 별로 소분 소분 가슴에 내려앉았다.
"쌤~기분 좋은가 봐요?"
"그치? 느껴지지?"
"네, 그 풍경위에서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는 것 같아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기분 좋아지는 덕담이다.
여행 중에 마주하는 벅찬 풍경을 사진으로 전해주는 친구들은 말했다.
"같이 가자!"
신체적 한계가 있어서 여행을 자주 못 가는 나에게 친구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들의 마음은 덕담이다.
하늘이 빚은 풍경 앞에서 우리는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라고 기분을 표현하지 않는다.
입 떠억 벌리고 감탄하다가 신비하다 못해 경이로운 환경 앞에 굴복하듯 조용히 감상한다. 그 마음이 사진 한 장으로 오롯이 전해지는 날, 느리게 걷는 내가 빠르게 걷는 사람을, 여행을 못 가는 내가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관용이다.
여행을 마음대로 못 가는 나는, 여행지를 상상하면서 그림으로 그렸다. 상상력이 그림으로 제대로 표현이 안되면 여행작가의 시선이 담긴 글과 그들의 사진을 보고 따라서 그렸다.
그때는 터키를 설명하면 이스탄불이 떠오르고 프랑스를 설명하면 에펠탑이 떠오르고 인도를 설명하면 갠지스
강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했다.
질투였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신영복 교수는 출소 후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감옥의 사색이 뾰족뾰족 기암괴석처럼 가슴에 꽂혔다.
20세기의 저물녘인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엮어낸 책이 있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신영복 교수의 해박한 지식, 현실에 대한 겸손하면서 날카로운 인식, 세상을 향한 정직하고 따뜻한 통찰을 아우른 책, 그 책이 2015년 개정판으로 탄생했다. <<더불어 숲>>
한평 남짓한 감옥에서 사색했던 그가 22개국을 여행하면서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듯 조곤조곤 여행지의 풍경을 서술했다.
분명 그는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아...] 감탄사를 자아내며 그의 언어를 잘근잘근 오래오래 먹었다. 여물에 목마른 소가 여물을 혓바닥으로 스물럭 스물럭 오래오래 씹어 먹듯, 여행지에 목마른 내가 천천히 천천히 그의 여행지에 동승했다.
관용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 이스탄불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내면의 애정이 관용과 화해로 개화할 수 없었던 까닭은 지금까지 인류사가 달려온 험난한 도정(道程)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가파른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더불어 숲>>
능력치를 돈으로 보여줄 때, 못 가본 여행지는 안 가본 여행지였고 못 가진 것은 안 가진 것이었다.
하차 부심이라고 한다. 능력치를 외제 차로 보여줄 때, 나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딱딱 가진 사람들이 부럽지 않고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을 턱턱 가는 가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가파른 길은 올라가지 못한다고 말하고, 외제차는 못 탄다고 말하니, 지금까지 달려온 험난한 세월을 안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관용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애정하고 가슴 깊이 우러나는 말로 칭찬하고 감사하면 그들은 말했다.
"그대의 삶이 멋지오"
언제부터였을까?
의도하지 않아도 함께 여행을 가고
바라지 않아도 선물을 주며
"그대의 삶을 응원하오"
진솔한 벗이 내 옆에 있었다.
가슴 벅찬 여행지에 혼자 있어 미안하다며 "함께 가자" 하고,
가슴 벅찬 문장이 가득하니 "함께 읽자"라고 하는
벗들이 있다.
이렇게 깊은 성찰이 하루 종일 떠다니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날은, 의태어다.
향단이가 밀어주는 그네에서 춘향이의 곱디고운 치마가 흩날리고 나뭇잎이 덩달아 흔들흔들한다고 하지 않는가. 박나래가 엉덩이 실룩실룩 걸으면 뒤뚱뒤뚱 걷고 있는 웰시코기 엉덩이가 떠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만의 감성으로 찍은 닭머루 해안 사진을 보고 어찌, [그러그러하네]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감탄사로 표현하기도 아까워서 입을 떠억 벌리고 사진 구석구석을 보고 또 보았다.
신영복 교수의 문장에서 소피아 성당이 이슬람 사원과 마주하는 모습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존으로 묘사될 때, 감탄사로 표현하기도 아까워서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관용이다.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관용의 풀어헤침이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관용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안아주자.
그들이 머무는 곳을 질투하지 않고 함께 느껴보자.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모양이 떠오르고 풍경이 그려지는 의태어를 쓰자.
그래서 오늘은, 의태어.
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손가락 사부작사부작 하며 살랑살랑 사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