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너를 사랑한다.
그녀가 좋은 것 같다.
그녀가 좋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래...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나의 인생 책, 데미안을 세 권 보유하고 있다. 번역하는 사람도 작가일까?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쓴 글인데 세 권의 글 맛이 다르다.
작품에서 [있다]의 빈번한 출몰은 번역투의 말이니 이해하고 읽어보자는 다짐을 허무하게 무너뜨리곤 했다. 심리 묘사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형 어미 [있다]의 출몰이 자꾸 거슬렸다.
‘박혀져 있다’ ‘기록되어 있다’ 마주하고 있다’
세 개의 문장 중에 [마주하고 있다] 정도는 마주 한다로 바꿔도 될 텐데...
불편한 문장을 만났다.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있다'와 '것이다'의 조합이 불편했다.
“집으로 왔다’라고만 해도 작품 전체 흐름에 방해되지 않을 텐데...
‘있다’와 ‘것’과 더불어 단어 ‘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적(三敵)’으로 꼽힌다. 헤픈 사용 빈도수 때문에 가시처럼 눈에 박힐 만큼 닳아빠지기도 했지만, 다른 책에서 번역의 기술을 이야기할 때 내가 미리 언급했듯이, 그 용법에서도 퍽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의 ‘수’가 이제는 영어의 ‘can’을 지나치게 닮아버렸기 때문이다.<<글쓰기 만보>>안정효
‘수’는 ‘아니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처럼 낭패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수’에서처럼 긍정적인 잠재성을 나타내는 의미에 사람들이 훨씬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그릇된 영어에 심하게 오염된 방송 용어에서 우리는 ‘수’의 어색한 모양새를 의식하게 된다. 화재나 질병 따위 사고나 재난에 관한 보도에서 “누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라거나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라거나 “유대가 깨져 파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안정효 작가는 <<글쓰기 만보>>에서 언급했다. 영어에 중독된 귀에 자칫 ‘can (be)’으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누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또는 “파탄을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다양화하면, 우리말 같지 않은 어색함이 사라지고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그리고 안정효 작가는 덧붙였다. [나는 이러한 영어식 표현을 ‘외래종’으로 분류한다.]
거슬리지 않는 문장은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고, 책을 끝까지 완독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안정효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친구와 대화를 하는, 학교에서 pt를 하는, 마이크를 잡고 강연을 하는 일상생활에서 외래종 표현을 접하면 친구의 말을, 발표자의 말을, 그리고 강연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기 어려운 나를 발견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간결한 문장인데도 책에 빠져 버리고, 화려한 달변가가 아니어도 그들의 문장에 빠져 경청하게 된다.
왜 그럴까...
불편한 문장과 불편한 화법은 왜 가슴에 남아있지 않을까?
외래종 표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길래 [활자중독]처럼 그들의 문장과 그들의 언어에 주목할까?
모호한 친구가 있다.
나를 지지하는 친구로 응원 메시지를 자주 전해주고, 맛있는 밥을 사주고, 같이 여행을 가는 친구인데, 모호했다.
"얼굴이 부었네, 일이 힘들어?"
"응... 괜찮은 것 같아... 근데..."
"누가 힘들게 하면 말해, 내가 목발로 때려줄게!"
"고마워..."
"배고프니? 밥 사줄게 먹자!"
"아,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살게."
"어허, 이중 메시지, 괜찮다는 표현 자제하기!.. 같다는 애매한 표현 자제하기! 착하고 좋은 친구인 건 나는 안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면 타인은 모른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
이런, 외래종 친구 같으니라고.
모호한 내담자가 많다.
딸이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할 때, [마음이 아픈 것 같다]고 전달해 주고 아들이 죽고 싶다고 했을 때, [마음이 힘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말이 없어지자, [바람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했고, 배고픈데 배고픈 것 같다고 했고, 힘든데 힘든 것 같다고 했다.
[... 같다]라고 하면 상대방은 추측한다. 이중 메시지는 외래 종이다. 다른 나라 언어처럼 공부를 해야 이해하고 이해하고 말을 건네도 [같다. 있다. 수. 것]이라는 번역의 말투를 쓰면 가슴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사랑하고, 배고프고, 힘들고, 아끼고, 좋아하는 진짜 감정들이 상대의 마음에 전달이 되지 않은 채 공중에 흩뿌려진다. 그래서 공허하다. 우리는...
거친 친구가 있다.
"방에 딱 들어갔더니, 딱 그 친구가 있네,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화끈한 성격을 드러내듯, 문장마다 '딱, 딱, 딱'을 사용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내담자가 있다.
"선생님,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
"아, 너무 감사드려요."
"너무 열심히 해서 너무 감동적입니다."
그녀에게 '너무'는 어느 정도의 양일까?
우리는 한 뼘밖에 안 되는 어휘력으로 풍부한 지적 능력을 과시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조금 느리게 말해도 좋으니, 다시 말하고 다시 글을 써보자.
'너무 고맙다'는 표현을 열 번 쓰는 대신에 "정말 고맙다."와 "굉장히 고맙다."와 "엄청나게 고맙다'와 "진심으로 고맙다"그리고 "눈물 나게 좋다"라는 표현으로 바꿔보자.
의태어 '딱'을 쓰고 싶다면, "집에 들어가 보니, 내가 싫어했던 그 사람이 서있네.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됐어. 내 앞에 우직히 버티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피할 사람이 아니지, 그 날은 용기 내서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를 건강하게 발산했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그녀의 마음을 겁나 쉽게 이해했을 텐데...
"방에 딱 들어갔더니, 딱 그 친구가 있네,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왜?"라고 응대했고, 그녀는 서운하다고 했다.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는 이유에서.
그때 이후로, 나는 그녀의 문장마다 "그래... 그래..."확실한 리액션을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의 숨은 마음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글은 목소리만 낮추었을 뿐, 절제된 웅변의 성격을 지닌다. 웅변에서는 설득할 결론이 힘을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한 '같아요'를 잘라 없애야 한다. 울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보라."온 것 같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정복한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또 이 말은 어떠한가. "주사위가 던져진 것 같구나. 루비콘 강을 건너야 할 것 같고 말이야. 부하들아. 그러니 너희들은 뒤를 따라야 할 것 같지 않느냐?" <<글쓰기 만보>>안정효
카이사르가 이렇게 말하면 힘이 빠진다는 글이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유명한 문장이 뭐길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상담사로 살아가면서 용기를 냈다.
진지하고 부드럽게 조언했다.
"[진짜 감정]을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딸이 마음이 아프죠? 아들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죠? 남편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확보하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투사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물질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했던 부모들은 집에 돌아오면 말했다.
"내가 너 때문에 일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 데, 마음이 아프다는 호사를 부리냐?"
"괴롭히는 친구도 이유가 있겠지? 네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어릴 때부터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으스러지게 안아주지는 못할 망정, [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네 부모들은 그렇게 시대의 아픔을, 한 뼘 어휘를 자식에게 투사했다.
사실은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하는 데 말이다.
어쩌리
골수까지 박혀버린 어휘력을 가진 부모보다, 조금은 젊고 조금은 더 지적인 그대들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게 더 쉬우니...
외래종으로 살지 말자.
마음껏 표현하자, 똑바로, 제대로, 명쾌하게.
아마 조금은 더 빨리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진지하고 부드러운 조언을 들은 내담자가 말했다.
"선생님, 아침에 문밖을 나서다가 만 원짜리 지폐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말하지 않고 몰래 챙겼어요. 지금 기분이 겁나 좋아요. 제가 커피 살게요. 공짜 돈 생긴 기념으로 말입니다."
누가 이 상황에 돈의 주인을 찾아주라는 윤리적 교훈을 남발하겠는가.
그녀에게 오늘은 '기분이 굉장히 좋은 날'이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노력했다.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상황으로 가볼까요? 피아노 콩쿠르에서 상을 탔을 때 집으로 뛰어들어가면서 뭐라고 했나요?"
"엄마! 상 탔어요!"
"엄마의 반응은요?"
"숙제해라, 방 치워라. 옷 정리해라..."
"안아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은 엄마의 그때 모습이 떠오른다는 거죠? 힘든 기억인가요?"
"그럴지도.. 아니, 네! 사소한 거 같지만... 아니, 제게는 사소하지 않아요! 그런 일상이 자주 있어서 힘든 기억이에요."
힘들다고 말하고 노출을 시키면 털어진다. 정확하게 힘들다고 말해야 듣는 사람이 안아 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귀여워요, 정확하게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는 모습이 제게는 너무너무, 아니 겁나 짱짱 귀여워요!"
그리고 덧붙였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00 탓이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대화하는 자체가 행복합니다. 실수해도, 말이 느려도, 커피를 사주지 않아도... 그럼에도 사랑합니다."
"진짜로요?"
"당근, 토끼가 좋아하는 당근 당근!"
토끼처럼 귀여운 그녀에게 엄지 척 올려주며 당근을 외치는 지천명의 상담사는 그날 하루 종일 행복했다.
다른 나라 별도 빛나고 아름답다. 외래 종도 질적으로 우수하다.
지금, 나는 말하고 싶다.
외래 종 표현, 쪼끔만 쓰면 안 될까요...? 제대로 그대의 마음을 알고 싶으니까요.
토종 한국인 그대가, 마음 깊숙이 숨겨 놓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저는 두 팔 벌려 안아줄게요.
그런대요...
천천히 해도 돼요, 그럼에도 그대를 사랑하니까요.
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외래 종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외국 언어로 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