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사업에 덜컥 합격했다
주간 백수부부 시즌7 39화 글쓴이 아내(망샘)
운 좋게 한 달 전 지원한 정부 사업에 선정됐다. 작년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요가 수업을 체계적으로 키워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낼까 말까 고민하다 당일 아침에 부랴부랴 작성해 지원서를 마감 시간 1분 전에 냈다. (닥쳐야 하는 버릇은 여태껏 고치지 못했다. 미리 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ㅎㅎ) 막상 내려고 보니 읍사무소에 방문해서 떼야하는 서류가 있었다. (이건 너무 구시대적인 것 같다. 왜 인감증명서는 인터넷으로 안 뽑아줄까?) 다른 서류들도 ‘민원 24’ 사이트에 신청한다고 바로 발급되는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결국 서류 몇 가지는 뺀 채 지원서만 냈다. 급하게 내느라 그곳에서 요구한 파일명으로 수정도 못한 채 성의 없게 제출했다. 이럴 거면 내지 말까 고민했지만 옆에서 그냥 내보라고 부추겨준 남편 덕분에 냈다.
광속 탈락일 줄 알았는데 웬걸, 며칠 후에 부족한 서류를 보완해서 다시 내라는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때부터 희망이 보였다.
‘이렇게 대충 냈는데 기회를 준다고? 비벼볼 만하겠는데?’
바로 읍사무소로 달려가 인감증명서를 떼고, 민원 24에서 유랑 중이던 서류도 발급받아 제출했다.
그래도 아무 기대 없던 일주일 후, 서류 전형에 합격했으니 다음 주에 와서 발표를 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와, 여기 생각보다 허술한데? 지원자가 별로 없었나 보다.’
이러다 진짜 되는 거 아니냐며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대학생과 회사원일 때 밥 먹고 하던 게 PPT 만들고 발표하던 일이라 오랜만에 하니 재밌었다. 퇴사하고 3년 반 만에 다시 만드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스타트업 교육 업계에 있는 친구의 조언을 얻었다. 산으로 갈 뻔한 자료가 그나마 봐줄 만 해졌다.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들을 계획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지원사업에서 혹여나 떨어지더라도 진짜 해보고 싶어졌다.
다행히 발표 날은 산부인과 정기 검진 날과 겹쳤고, 두 곳은 차로 3분 거리였다. 왕복 1시간 30분인 시내에 나갔다 오는 게 체력적으로 부담인데 잘됐다. 게다가 허름한 건물을 상상하고 도착한 발표 장소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발표를 마치고 나가면서 이런 곳이라면 합격해서 계속 오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함께 참관한 남편과 후기를 나눴을 땐 지원 사업의 취지와 내 발표 내용이 좀 어긋나는 것 같아 안될 것 같다며 마음을 애써 비웠다.
그런데 열흘 후,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임신 후, 일을 대폭 줄이며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상태에서 자신감이 충전됐다. 특히 4월은 입덧을 핑계로 쉰 기억밖에 없는데 하나의 성취가 생겨 뿌듯했다. 내 실력 아직 죽지 않았구나!
혹여나 사업을 하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의 모래사장이 생겼다. 앞으로의 계획은 출산 전까지 요가를 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을 찾는 것. 집이 아닌 독립적인 공간이 생긴다면 다른 선생님도 섭외할 수 있고, 여행 때부터 꿈꿔온 요가, 힐링 프로그램 그리고 민박까지 운영할 수 있다. 어쩌다 사장이 된 나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게으른 사장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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