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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ySocks Mar 05. 2016

금지곡이야기 1

이미 지나간 이야기...아니 아직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

제가 2008년 경에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때 시리즈물로 엮어서 썼던 글을 여기로 옮겨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8년전 그 때 글을 보면 참 유치한 문체에 과격하고 정제되지 않은 문장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합니다만, 그래도 조금 다듬어서 여기에 다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Throwback2008이라고나 할까요.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1. 음반심의 시절


예전에, 아주 옛날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뮤지션이 창작하는 모든 노래는 공연윤리위원회(80년대에는 아마 공연윤리심의위원회였던 것 같습니다)의 심의를 받지 않으면 발표하거나 수입하여 유통하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mp3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입음반이 유통되던 시절도 아니고, 
금지곡으로 지정이 되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공식적으로 그러한 음악을 듣는 것이 "금지"되었었습니다. 
그 역사는 아마 아주 오래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부터, 대한민국 건국 이후까지도 계속되어왔던 하나의 통제시스템이었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이러한 심의의 과정에서 금지곡의 낙인을 받아 사라져갔다고들 합니다.

언젠가부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어떤 노래들이 이렇게 국가권력에 의하여 난도질되어 왔는지 한번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료가 참 없네요...

2. 해적판? 빽판? 


저는 개인적으로 금지곡이 있는 앨범은 아무리 좋은 앨범이라도 라이센스반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의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단 한곡이라도 난도질당한 앨범이라면 벌써 그 앨범이라는 가치는 씻을 수 없을만큼 손상된다고 생각해서 도저히 제 소중한 용돈을 투자해서 살 수는 없었던 겁니다.
더구나 80년대 초반에는 음반사에서 금지곡이 있으면 LP 뒷면의 그 노래 credit 부분을 덧칠하거나 스티커를 붙여서 출시했기 때문에, 어떤 곡이 금지곡인지, 몇곡이나 짤렸는지 참 알기가 쉬웠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각 음반사의 편집기술이 발달하면서, 금지곡이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시절에, 청계천을 수원지로 하여 각 레코드점마다 소규모로 유통되던 빽판은 머랄까..특히 HM/HR 매니아에게는 하나의 해방구였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800원짜리 흑백 표지 빽판을 거의 사지 않았었는데, 이는 제가 LP를 모으던 시절이 벌써 컬러 빽판이 많이 유통되던 85년 이후였고, 실제 동네 레코드점에는 흑백 빽판을 별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판 좀 듣는다는 애들 사이에서는 흑백 빽판은 그나마 참 음질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평도 많았었습니다. 물론 2500원짜리 컬러 빽판도 품질이 과히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참. 아버지가 오디오 좀 하신다는 애들 중에, 빽판으로 턴테이블 돌리다가 바늘 망가진다고 비오는날 먼지나게 맞던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빽판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었는지, 누가 그러한 지하세계의 음반유통의 실권을 쥐고 있었는지, 어떠한 이익을 챙겼는지, 어떻게 빽판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런건 잘 모릅니다. 그냥, 한명의 소비자일 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해적판이, 과연 제도 규제와 지적재산권을 탈법적으로 회피한 하나의 부산물인지, 아니면 암흑같은 시대에 있어 하나의 해방구이자 생명수이자 문화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했는지 어느 한쪽의 측면만 지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3. 칼자루 


당시 음반심의기준은 이렇습니다. 1994년 당시 시행되던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 법률 규정입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내용의 음반 또는 비디오물에 대하여는 이를 심의를 받은 것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다만, 그 해당 부분을 삭제하여도 사용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부분을 삭제하고 심의를 받은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

1.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 또는 이익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내용

2.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 


시행령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저속 또는 외설적 언어를 사용하거나 음란한 행위를 묘사하는 내용

2.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범죄수단을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섬세하게 묘사하는 내용

3. 법의 정당한 집행을 조롱·비방하는 내용

4. 신앙·종교의식등을 조롱 또는 증오의 대상으로 하는 내용

5. 존비속·노인·아동·여성등의 학대를 정당화하거나 자살행위를 권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

6.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또는 물건을 허위로 묘사하는 내용

7. 국가 또는 국기등 국가의 상징을 경건하게 취급하지 아니하거나 국가의 위신을 현저히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 


수많은 노래들, 특히 우리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수 많은 뮤지션들의 창작물이 이 일곱가지 잣대에 걸려서 싹둑싹둑 잘려나갔습니다. 


4. 심의백서


여기저기서 옛날 음반심의 관련 자료를 뒤적뒤적 해보았는데, 다른 자료는 딱히 남아있는게 없구요, 매년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영화, 비디오, 음반 등에 관한 심의에 관한 결과를 정리한 심의백서가 출간되었던 것 같습니다. 

뭐, 그 내용에 특별히 어느어느 곡에 대하여 어떤 이유로 금지곡 지정을 했다 이런 것은 없는데(아마도 너무 많아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93년도의 심의백서가 국회도서관에 남아있었습니다. 

음반심의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 내지 훈시가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아주 재밌습니다.


특히 저는 아래 '맺는말'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판테라의 Fucking Hostile이 왜 금지곡이 되었는지 알 수 있고 - 제목만 봐도 금지될 것은 아예 가져오지도 마라는 취지 - 당시 각 음반사에서 나름 심의를 몰래 피하기 위하여 어떤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93년도만 해도, 사회의 가치관이 좀 더 개방화되어서였는지 몰라도, 종전에 금지곡이었던 많은 노래들이 재심의 끝에 통과되어 재발매되었고, 우리가 아는 많은 보석같은 노래들도 다시 발매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 LP를 구하러 다녀보면, 같은 앨범이 지구레코드나 오아시스에서는 금지곡이 삭제되어 있는데 CBS/Sony나 WEA에서는 복원되어 발매된 예를 가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심의백서에 나타나는 당시 음반심의 관련 제도와 기구가, 특히 현재의 가치관에서 보면 아직도 국가중심적이고 통제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랬던 93년이 지나가고, 94년, 95년으로 흐르던 어느날, 우리나라의 음반심의제도에 대변혁을 가져온 큰 사건이 펼쳐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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