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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ySocks Mar 07. 2016

금지곡 이야기 2

정태춘씨 그리고 헌법재판소

오늘도 2008년도 제 글 중 하나 옮겨봅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많이 각색했습니다 (....) 그리고 틀린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ㅠㅠ


1. 정태춘씨의 투쟁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음반심의제도의 철폐에 앞장선 것은 저항정신이 충만한 HM/HR뮤지션이나 매니아들은 아니었고, 그 음악에 한국적인 한이 깃들었다고 하는 포크록 뮤지션인 정태춘씨였습니다.

(이하 출처: Naver 지식인)

그는 91년 음반심의제도에 반대하는 단체를 결성하고 여러 활동을 해왔고, 특히 90년도에 제작되어 91년에 발매된 음반 "아, 대한민국..."에서, 공윤의 사전심의 결과 및 수정지시를 거부하고, 판매배포를 강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93년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앨범을 심의 없이 출반, 판매, 배포를 강행하였고, 사인 판매, 시민 지지서명 등의 활동을 병행하였다고 합니다.  


93년에 문화체육부는 서울지검에 정태춘씨를 고발하였고, 94년 정태춘씨의 음반을 판매한 레코드점들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서울지검은 정태춘씨를 음반법위반으로 불구속기소합니다. 

그리고 그 공판과정에서 정태춘씨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해마루의 천정배 변호사는 음반법상 심의제도가 사전검열에 해당하여 위헌이라는 취지로 위헌심판제청을 하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을 하게 됩니다. 


2. 대한민국 헌법과 헌법재판소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행 헌법은 87년도 헌법, 즉 6.29선언에 따른 개헌으로 대통령직선제로 변경되면서 전면개정된 헌법인데, 제21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第21條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조항은 87년도 헌법개정 당시에 신설된 것입니다. 제5공화국 헌법(80년도 개정헌법) 한번 볼까요?


第20條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여기까지는 같습니다)

②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정반대죠? 표현의 자유가 공중도덕과 사회윤리에 대하여 제한될 수 있음을 헌법에서 명확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유신헌법(72년개정)으로 가볼까요?


 第18條 모든 國民은 法律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言論·出版·集會·結社의 自由를 制限받지 아니한다.


여기에서는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전문용어로 "법률유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법률로만 만들면 무제한으로 제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 그리고 대통령이 선포하는 계엄령이나 긴급명령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


여하튼, 87년의 민주화는 헌법의 내용의 변경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는 제4의 권력기관을 창설하는 변혁을 가져오게 됩니다. 즉, 법률의 유효성을 전제로 이를 적용하는 대법원과 달리, 법령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전적으로 심사하는 권한을 가진 독일식 사법기관을 창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태춘씨의 사건을 담당한 서울형사지방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을 통해, 결국 공윤을 통한 음반심의제도에 대한 합헌성 여부의 판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3. 위헌사건...그리고 위헌결정 


헌법재판소 기록상 문화체육부 장관은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 우리나라는 서구의 개방적 관행이나 생활문화와는 달리 전통적인 고유의 미풍양속과 도덕적 규범속에서 살아가고 있음


- 대중가요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회전반에 폭넓게 확산·보급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고 국민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므로 윤리적 측면에서의 여과장치가 반드시 필요함


- 또한 국민정서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사전심의 없이 배포되고 난 이후에는 그 악영향을 돌이킬 수 없으므로 사전심의제도가 반드시 필요함


- 따라서 현행 심의제도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헌법 제37조 제2항의 범위내에서 음반의 질적향상을 도모하고 음반산업의 건전한 육성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이 문화생활 및 정서생활에 이바지하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임


한편, 서울지검 및 법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 대중예술이 국민의 문화생활과 정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에 대하여도 일정한 정도의 제한이 필요하며 무제한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은 아님. 특히 국가존립의 기초가 되는 가치질서나 공중도덕 또는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내용의 음반이 일단 판매·배포되면 그 영향은 기하급수적으로 대중에게 전파되는 것이기 대문에 이를 사후적인 방법으로 구제하기 매우 곤란함


- 음반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 제17조 제1항에서 합리적인 심의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심의기준은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민주사회에서 다소 추상적이고 경계가 불분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더 이상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함 


헌법재판소는 1996년 10월 30일 이 사건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내립니다. 


이 사건 法律條項은 審議機關인 公演倫理委員會가 音盤의 제작.판매에 앞서 그 내용을 審査하여 審議基準에 적합하지 아니한 音盤에 대하여는 판매를 금지할 수 있고, 審議를 받지 아니한 音盤을 판매할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공연윤리위원회는 공연법에 의하여 설치되고 행정권이 그 구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음반에 대한 위와 같은 사전심의제도는 명백히 事前檢閱制度에 해당한다. 
헌재 1996.10.31, 94헌가6, 판례집 제8권 2집 , 395, 396-396


이로써, 해방 이후 수십년간 저항적인 뮤지션들의 목에 칼날을 겨누었던, 수많은 해외 뮤지션들의 주옥같은 곡에 칼질을 해댔던 음반심의제도가 철퇴를 맞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는 LP가 속절없이 판매량이 줄어가고 CD가 음반매체로서의 역할을 주도해나가던 시대인데, 수입CD의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하지요..서태지의 시대유감도 이때 다시 싱글로 발매가 되었고..

그런데 문체부에서는 이후에도 등급심사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심의보류라는 편법으로 사실상 영화/비디오/음반에 대한 심의를 시도해왔고, 이에 대한 몇차례의 위헌결정을 통하여, 결국 청소년보호 딱지만을 붙인채 판매하는 현행 음반심의제도가 확립됩니다.


위 위헌결정이 나기 전의 제도, 그리고 문체부와 법무부의 의견에서 언급된 내용은 그 목적 자체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적인 목적의 타당성에 대하여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규제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이지, 국가가 나서서 이를 통제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먼저 판단을 한다...이건 기본권적 논리에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사실 통제의 효과의 측면에서도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자유 사상과 자유 표현은 통제할 수 없음이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국가가 도덕률을 강제하는 "오지랖형" 규제는 극한에 이르게 되면 결국 수 많은 부작용을 남기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수 많은 지하경제와 탈세와 마피아를 양산하고 일반인들을 범죄자 또는 단속의 희생양으로 몰아갔던 미국의 금주령the Prohibition이 그 좋은 선례입니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시장"은 그렇게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로 인하여 나타날 수 있는 열등재들은 결국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걸러지고 도태될 것입니다. 그리고, 열등재라니, 누가 열등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유교적 위선의 역사 속에서 반사회, 비윤리로 폄하된 수 많은 눈부신 작품들이 이제는 문화적인 거대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역사의 발전이 "파괴적 혁신"일진대, 문화의 혁식은 윤리와 도덕을 가장한 위선의 파괴를 수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금지곡 풀리고 20여년간,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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