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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ind Apr 22. 2020

정답을 말해선 안 되는  인생의 순간들

남에게 하는 속 이야기-2

돌이켜 보면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말이야'라고 하기엔 객관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그때 왜 그러지 못했을까', '꼭 그랬어야만 했었나' 하고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멍하니 산을 오르다가, 어느 곳인가로 운전을 하다가 의식의 흐름이 어느덧 그때 그 상황으로 되돌아 간다. 무척이나 후회로 남아 그런 것이리라 생각해보다가도 어쩌면 후회보다는 나의 찌질함이 어마어마했기에 잊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누구나 찌질의 역사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찌질한 과거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했던' 과거다.

지나치게 사소했거나 반대로 엄청나게 큰 일이었다면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했던 과거가 찌질하게 돌이켜지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나 문득문득 현재의 나를 놓지 않고 있는 과거의 그 순간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어쩌면 남들에게도 있는 그런 순간일지도 모르는 '연애'와 '회사'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초기, 사랑의 시옷도 몰랐지만 다른 커플들을 흉내 내며 알콩달콩 잘 지냈다. 대중매체가 만들어놓은 사랑과 연인의 관념을 충실히 따랐고 어쨌든 그럭저럭 남들에게 괜찮은 커플로 보였다. 그리고 군대를 가고 전역을 하고 복학을 했다. 나는 여전히 한 여자의 연인이었다. 두 사람 다 첫 연애였고 큰 부침이 없던 우리는 헤어지는 법을 몰랐다. 말 그대로 정말 방법을 몰랐다. 돌이켜 보면 둘 다 가슴 한 켠에는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속 깊은 곳에 감춰놓은 부정한 마음을 둘 다 입밖으로 결코 꺼내지 않았다. 마침 취업난이 고학번을 위협했고 취업준비로 자연스레 화제가 전환되어 우리는 결국 졸업후까지 연인으로 남게 되었다.


취업을 하고 각자의 직업과 생활이 생겼다. 스무살부터 취업을 할때까지 나만의 경계가 없다가 갑자기 생겨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우린 헤어지는게 좋겠어'라는 말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서로는 성격부터 취향까지 하나도 맞는것이 없었다.


우리 커플은 서로에게 가시를 숨기고 있는 선인장이었다. 가까이 하면 할수록 서로를 아프게 찔러댈 뿐. 더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였다. 하지만 한두해를 더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며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고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정답을 말해서는 안되는 바보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결론적으로는 직장 스트레스와 술의 힘을 빌려 내가 먼저 입밖으로 그 말을 꺼냈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비난했다. 그리고 3개월 정도를 꾸준히 전화와 문자를 보내 나를 설득하던 그녀는 거짓말처럼 나와 헤어진 6개월 뒤 결혼을 했다. 그녀의 결혼식장을 다녀온 지인들의 말로는 신랑이 되는 사람과의 연애 시절 사진이 춘하추동 사계절로 있었다고 했다. 내가 헤어지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녀도 결국 용기내어 말하지 못한 정답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랬었고 당신이 그랬듯이 우리는 세상이 시키는대로 세상이 원하는 정답을 찾아가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해서 정답에 가까워졌고 지금의 선택이, 모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때문에 나의 현재 삶이, 모습이, 관계가 정답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해서는 안되는 불경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면 정리하자. 당신은 이미 정답을 알고있다. 그 정답의 기준은 오직 당신이고 당신만의 정답에 오답처리를 하는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어느날 회사에 출근해서 좌우를 돌아 봤더니 한 숨만 나오고 회사에서 한숨을 쉬는 그 찰나의 순간조차 거대한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된다면 그날로 회사를 그만 두자. 나의 두번째, 세번째 회사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안의 정답을 스스로 오답으로 만드려고 애쓰며 사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망설여지고 고민되지만 사실은 정답을 알고 있다면 그 정답을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은 시청률 5%만 나와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공감하고 보는것처럼 떠들내는 드마에서나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정답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만약 그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면 말하자,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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