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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Feb 21. 2023

별과 별 사이 맥을 짚는 손 (3/3)

성명진 .『오늘은 다 잘했다』




별이 자라는 속도   



       

집 안

구석진 데서 발견한

씨 몇 알     


아빠와 나는

무슨 씨인지

내내 궁리하다가  

   

봄이 오면

흙에 심어 보기로 결정했다     


이 문제는

봄에게

흙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공부」 전문 ―




   공부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이 보급되고부터 답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모르는 게 있다면 검색 몇 번으로 궁금증이 허무하도록 쉽게 해소된다. 한술 더 떠서 한국 교육열은 어떤 대상을 궁금해 할 여유가 없다. 궁금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호기심과 궁금증은 교육이 맡은 바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기다림과 관심 없이 대상을 아는 일은 위험한 게 아닐까? 빠르면서도 겉으로만 배운 앎은 마주하는 대상을 쉽고 가볍게 대하게 만들지 모른다. 허술하게 짠 앎과 이해라는 그물망은 그대로 사회에 이어질 것이다.


   시에 등장하는 아빠와 나는 씨앗의 정체를 봄과 흙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기다린다. 따뜻한 봄이 와서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아이는 무척 궁금해 할 것이다. 어떤 새싹을 틔울지, 어떤 꽃을 피울지 말이다. 아이의 물음에 형식적으로 답변해주는 것과 아이에게 흥미롭지 않은 공부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라는 말과 다름없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이 정해준 콩도 팥도 아니다. 봄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를 씨앗이다.       



   





잠깐 온

눈     


승기가

웬일이세요?

물으니   

  

아니야

얼버무렸다

     

하굣길

모퉁이에서 서성이던

다른 데 사는 승기 아빠    

 

멈칫거리다가

더는 말없이

    

그냥 갔다     


승기 탈 없는 거 보고

봄 온 거 보고




―「삼월에 온 눈」 전문 ―       



  

   삼월에 온 눈은 승기 아빠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테다. 정작 아이와 함께 지내는 가족과 선생님도 삼월의 눈일지 모른다. ‘이제 학교 들어갔으니 어련히 잘 다니겠지’, ‘친구랑 잘 지내니 별 탈 없겠지’ 하고 한숨 돌리는 사이 아이는 부쩍부쩍 커 있다. 키만 큰 게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하나둘 알아가고, 생각과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하고 깜짝 놀라면, 어느새 방문을 닫고 혼자 시간을 보내려 할 만큼 커 있다. 아이가 조용히 자라는 속도에 놀란 어른은 너 나 할 것 없이 삼월에 온 눈이 된다.


   승기 아빠는 승기가 탈 없는 걸 보고 그냥 돌아갔지만 분명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을 것이다. 같이 밥이라도 먹은 뒤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금방 녹아 사라지기 싫어서 발걸음이 무거운 눈일 테다. 하지만 승기는 삼월에만 승기가 아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열리면 곤란한 적이 있었을 거다. 승기는 이부자리에서 어떤 눈물을 흘렸을 테고, 엄마와 아빠를 마주할 때 어떤 표정을 숨겨왔으며,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길가를 서성였을 거다. 밤을 견디고 계절을 하나씩 보낼 때마다 안으로 깊어지고 있을 테다. 그렇게 아이는 알게 모르게 자란다.


   나는 스무 살이 되고부터 타지살이를 해왔다. 간만에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면 막냇동생 손을 잡고 도서관이나 서점, 공원이나 바닷가를 다녀온다. 내려가기 전에 전화하면 몇 밤 더 자야 오냐고 물어왔는데, 언제부터 날짜도 안다. 못 본 계절만큼 훌쩍 커 있다. 어떤 밤을 보냈을까. 위쪽에서 하얀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가져가면 동그래지던 눈동자가 선하다. 동생과 나 사이에 내리는 눈이 오래 머물러준다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별이 일찍부터 깊은 빛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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