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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Feb 21. 2023

별과 별 사이 맥을 짚는 손 (2/3)

성명진 .『오늘은 다 잘했다』




달이 아니라 별로 머문 어른      


    


나랑 걷고 있는

할아버지 발밑의 그림자,

아이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할아버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자

어깨 들썩거리는 그림자는

할아버지 마음속에서

밖으로 뛰어나왔겠지   

  

길바닥에선 지금

아이와 아이가

친구처럼

나란히 가고 있다




―「두 그림자」 전문 ―



         

   학교에서 수영장으로 걸어가는 . 규칙적으로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뽕짝이 흘러나왔다. 허리춤에  휴대용 라디오에서. 어깨와 팔을 들썩이며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손에  가방과 수영바구니도 덩달아 흔들렸다.


   아이가 자주 보는 어른은 일하는 어른이다. 집에 있는 어른은 끼니를 차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학교에 있는 어른은 수업을 하거나 교무실에서 회의를 한다. 식당에 있는 어른은 음식을 만들거나 식기를 씻는데 분주하다. 학원과 집으로 데려다주는 승합차 운전석에 앉은 어른은 앞을 보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어른들은 일이 그렇게 좋을까?


   집으로 돌아가서 만날 수 있는 어른은 쉬는 어른이다. 어른은 피곤에 절어있다. 주말에 밀린 잠을 실컷 자거나 누워서 영화나 드라마를 봐야 한다. 심지어 집에서도 일할 때가 있다. 어른은 쉬기 바쁘다.


   반면 아이의 하루 최대 관심사는 ‘오늘 무얼 하고 놀지?’다. 내 막냇동생만 보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오빠야, 오늘은 의사놀이 할 거야 일어나” 하며 잠을 깨웠다. 놀이 하나가 끝나면 이제 좀 쉴 줄 알았는데, “한 다리로 콩콩 뛰기 하자” 하며 다음 놀이를 대령한다. 소위 놀이 지옥이다.


   아이가 바라보는 어른은 얼마나 지루할까? 지루한 어른에게 아이가 기댈 수 있을까.  아이의 밤을 귀기울여 들으려면 우선 잘 놀고 봐야한다. 한 명 한 명의 어른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도 어른이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진짜 놀이는 외모, 성별,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참여자가 모두 즐기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재미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서 어른의 직위, 규칙, 경직된 예의 같은 것은 소멸한다. 놀이를 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적 인격을 벗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다. 모두 한 명의 아이가 된다. 그 과정으로 아이든 어른이든 유대감을 나누고 친구가 되어간다. 아이와 할아버지의 그림자처럼.         



 





조용한 일     


우리 소는

뿔을 불끈 세웠다가

가만히 눕혔어요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는

할아버지 손 쪽으로




―「조용한 일」 전문       

   



   소는 어떤 일로 불안했거나 격앙했을 것이다. 속이 캄캄했거나, 속에 불이 타올랐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준다. 어떤 말없이 찬찬히 쓰다듬어주었을 것이다.


   화 날 때. 무서울 때. 억울할 때. 무언가 잘못해서 고백하기 망설일 때. 아이와 곁에 있는 일은 다그치고 캐묻고 꾸짖는 게 아니라 잠시 조용히 있어주는 일이다.


   한창 사고 치던 어린 날, 아파트 2층 유리창을 깬 적 있다. 다른 반 친구의 집이었다. 바깥에서 돌팔매질을 연이어 한 탓이었다. 어쩔 줄 몰랐던 나는 현장에서 도망쳤다. 그곳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집 어른이 물어서 우리 집에 전화하겠지? 집으로 도망치면서도 무척 무서웠다.


   엄마가 있었다. 불안했다. 방에 들어가 쥐 죽은 듯 있었다. '띠리리리링~'. 침을 꿀꺽 삼켰다. '여보세요'. 인사말이 지나고서 점점 낮아지는 목소리. 그 집 어른이 분명했다. 나는 죽었다. 호되게 혼나겠지. 시간이 굼뜨게 흐른다. 내 방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땀이 나는 손으로 문을 느릿느릿 열었다. 잔뜩 화나 있을 엄마를 상상했다. 크게 소리치면서 왜 그런 사고를 치냐고 나무라겠지? 매도 맞겠지? 심장에서 북 소리가 울려퍼지던 순간.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한참 쓰다듬어주시다가 이름을 불러주시며, ‘엄마랑 사과하러 가자’ 하셨다. 눈물과 콧물이 질질 흘러 나왔다.


   사과하고 돌아온 그날 엄마는 내게 화를 내지도 잘못을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그때 배웠다. 책임지지 않으려 할 때 더 무섭다는 걸. 잘못이나 실수를 했다면 무서워도 도망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아무런 설명 없는 손길과 음성에서 나는 한 뼘 자랐다. 아이는 조용한 속도에서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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