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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소리 Feb 21. 2023

별과 별 사이 맥을 짚는 손 (1/3)

성명진 . 『오늘은 다 잘했다』




성명진 . 창비 . 2019




별이 견디는 어둠          




   도넛과 커피를 파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는 종종 나어린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구겨진 천 원 한두 장을 꼬옥 쥐거나 동전을 짤랑이며 들어온다. 얼마 동안 모은 용돈일까? 지폐의 주름을 보고서 몰래 웃는다. 무얼 할지 거듭 고민했을 것이다. 한 번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손님이 진열대에 있는 식혜 캔을 갖고 오셨다. 계산 기계에 가격이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요즘 캔 음료가 천 원에 조금 못 미치니까 오백 원 정도면 되겠지? 손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싶어 여쭤보았다.


“얼마에 사고 싶어요?”

“음... 오백 원이요!”

“오!, 저도 딱 오백 원 생각했는데”


   같이 일하는 고참 누나가 면박을 줬다. 그렇게 팔면 안 된다고, 규칙에 맞게 팔아야 한다고. 누나는 사장님께 전화했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김빠진 얼굴이 됐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오백 원에 팔면 된다고 하시네” 했다. 손님과 나는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아이의 눈빛과 웃음이 좋다. 검은자가 반짝이는 눈이 밤하늘의 별 같다. 그네들의 소소한 욕심을 듣거나 노는 일을 지켜보면, 많은 것을 안고 가려다 어중간하게 놓치며 사는구나 싶다. 더불어 그 눈빛에 빠진 채 그들이 어떤 어둠을 견디고 있는지는 까마득하게 잊기 마련이다.






가방을 빨아야겠다며 엄마는

가벼운 것들이니

종이 가방에 넣어 학원 가라 했어요


참고서 두 권

노트

수첩

필통

근데 이것들은 아주 무거워

종이 가방 끈이 툭!

  

이것 보라고요

이러니

제가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겠어요




―「알아주세요」 전문 ―       




  머리가 크고부터 어렸을  고민이   아니게 된다.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리고서 안절부절못할 , 친구들에게 놀림 받은 일이 집에서도 자꾸만 생각날 , 선생님께 꾸중 들어서 침울할 , 유달리 오늘은 책상을 박차고 나가 놀고 싶을 . 그저 지나왔기 때문일까? 당연하고 합당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가방을 자그마한 어깨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가 멨던 가방의 무게는 잊은 채로.






선생님이 바삐 어딜 가는 중이라서

서로 스치고도 들키지 않았다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가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어서

들키지 않았다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다른 생각에 팔려 있어서

들키지 않았다, 내 눈물    

 

사실은

다정히 불러 주는 사람에게

어깨를 감싸 주는 사람에게

가만히 들키고 싶다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은」 전문 ―   


   


   그런 때가 있다. 친구가 아니라 어른의 귀가 필요할 때. 어른의 눈길이 필요할 때. 성적이 떨어졌다고, '요즘 공부가 잘 안되니? 무슨 일 있니?' 하고 위에서 아래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옆에 서 있는 어른이 필요한 때가. 하지만 우리는 나중에 기억도 못할 업무를 전부라 여겨 아이의 밤을 하나둘 놓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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