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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Oct 28. 2020

제주도,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 (1)

코로나 시대의 제주도 다시보기 3편

코로나 (COVID-19)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이러한 커다란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노동과 일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대면 접촉이 기피되는 상황 속에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재택근무, 원격근무가 일상화될 것인가? 일하는 공간인 오피스는 여전히 필요한 것인가? 빌딩과 도심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모두 한 곳에 모여서 근무하는 업무 방식을 탈피할 필요가 증가되고, 도심에 위치한 오피스 공간의 활용성은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출퇴근을 위해서 업무공간으로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아야만 한다는 주거공간의 강박감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점점 느슨해지고 오히려 좀 더 도심을 벗어난 자연환경에 거주하고 싶은 니즈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면서 제주도에 자리한 '다음 스페이스'를 재조명해 본다.

다음 스페이스닷원 ⓒKyungsub Shin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 다음은 카카오와 다음카카오로 합병된 후 현재는 카카오로 기업명이 바뀌었다)의 이재웅 창업자는 하루 8시간을 근무하면서 출퇴근에 4시간이나 쓰는 사원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런 환경에서 창의력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하여 사내 게시판에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어디가 좋겠느냐고 물었는데 전주, 경주 등 많은 후보지가 거론됐지만 이왕이면 육지와 단절된 제주도가 좋겠다고 결정한다. 2004년 일명 ‘즐거운 실험’이 가동됐다. 제주도 유수암리의 한 펜션에서 다음 직원 16명으로 출발한 것이 다음 본사 제주 이전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다. 이후 단계를 거치면서 제주 근무 인원이 점차 늘었고 2006년에는 글로벌미디어센터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제주 본사 이전의 큰 그림이 그려졌다.


기존 사옥 외에 제주도에 새로운 사옥이 필요했던  사옥의 확장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제주도의 많은 지원과 혜택도 본사 이전에 힘을 더했다. 제주도와 JDC(제주국제도시자유개발센터 : JDC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조성하기 위해 관광, 교육, 의료, 첨단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제주대학 근처의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1,095,900 평방미터의 개발되지 않은 광대한 지역을 기술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단지(현재.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지정하였다. 제주도는 바로 이곳에 다음 본사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이다. 당시 수도권 내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 이외의 지방 이전을 하게 되면(당시 20 이상만 거주 요건 충족 시 본사 이전 인정) 수년간 법인세 면세와 감면, 산업단지  토지 구입이나 시설자금 지원  혜택이 많았다. 관광 서비스업, 농수산업 외에 이렇다  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제주도는 한국의 IT 대표 서비스 중의 하나인 다음을 제주도에 유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정 홍보효과와 특히 인구 유입(제주도 주민등록인구는 2006년도 561,695명, 2020년도 696,443명)에 방점이 있었다.


다음은 본사 건물 스페이스닷원을 시작으로 게스트하우스, 보육 시설 등을 갖춘 스페이스닷투로 지속적으로 사옥을 넓혀 나갔다. 사옥 명칭을 스페이스닷원으로 정한 것도 앞으로의 확장에 대한 계획을 반영한 결과다. 다음 사옥 스페이스닷원은 2009년 11월에 준비를 시작하여 2012년 3월에 완공이 되어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직원 수 1307명 중에 제주 사옥 근무 인원이 350여 명이었다. 스페이스닷원은 2012 한국 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대상과 2012 한국 건축가협회상까지 휩쓸었다. 사옥은 다음의 기업 철학인 ‘개방과 소통’뿐만 아니라 제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페이스닷원은 톡톡 튀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듯한 여느 IT 기업 사옥과 확연히 다르다. 제주 오름과 동글동글한 다음 로고에서 영감 받은 다음 본사 외관은 하늘로 쭉쭉 뻗은 고압적인 사무 빌딩과 달리 작은 언덕에 기대어 땅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용암 동굴을 연상시키는 내부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붉은 화산 송이석 색상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주도한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족구를 하거나 텃밭에 심은 상추나 허브를 돌보거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며 졸린 직원은 수면실을, 빨래를 미처 못한 직원은 세탁실을 이용한다. 구내식당에서 급하게 식사를 마친 뒤 책상에 엎드려 새우잠 자기 바쁜 도심 속 현대인과는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 갔다. 직원들은 업무가 끝나면 지하철로 한두 시간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해변에 나가서 피크닉을 하고 주말엔 수상스포츠나 오름을 다니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환경을 제주 본사에서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다음 스페이스닷원의 실험은 물리적인 소통과 교류를 위하여 교통이 편리하거나 도심지에 위치하게 되는 물리적 한계를 다음이 가지고 있는 IT기업의 특수성과 접목되어 물리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 관계성의 확장을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서울과 제주는 분명히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디지털 세계에선 서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고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제주 이전 프로젝트 '즐거운 실험'이 2015년에 11년 만에 막을 내렸다. 현지 근무가 불가피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인력 등 소수만 남기고, 제주 본사 직원 약 400여 명 대다수를 경기도 판교의 다음카카오(현재 카카오) 통합사옥으로 이동시켰다. 현지 사업 및 공헌 활동은 지속하지만 다음만의 기업 문화였던 '제주 이주' 정책은 중단한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이런 결정은 카카오와 합병 후 새로운 경영진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 다음이 제주에 본사를 두고, 신선한 환경에서 포털 서비스를 기획·개발하려 한 '즐거운 실험'은 종료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운 실험'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이하는 시점에 많은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재택, 원격 근무는 COVID-19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전 분야에 걸쳐 진행된 사회 실험이라 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서울 도심 본사로 출근하는 대신 서울 전역과 인근 도시의 분산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하여, 전 직원의 출근 시간을 20분 이내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에 사무실과 직원을 두고 있는 페이스북(직원 4만 8000명) 등의 디지털 기업들은 원하는 직원들은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제 노동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는다. 노트북 하나면 어떤 정보든지 입수 가능하고, 어떤 업무 프로세스에도 접근할 수 있고, 통합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일을 공간적, 시간적 귀속성을 완화시키고 유연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일의 디지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디지털 전환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과 경제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제주도는 다음의 '즐거운 실험'과 같이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제주도 다음 본사는 도심지와 거리가 먼 제주도에 자리 잡으므로써 업무와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다음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소통을 디지털이 아닌 현실 세계에 자연스럽게 펼쳐 놓고 연결함으로써 도심지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공간적 한계를 디지털이 추구하는 영속성과 다접속 공간으로 풀어내고 보여주고 있다.


<리얼제주 매거진 iiin>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곳을 가장 빠르고 속속들이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섬에 있다(I'm in island now)’라는 영어 문장의 첫 글자들로부터 이름을 따온 iiin은 제주라는 섬의 사계절을 관찰하고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여유롭고 스타일리시한 자신만의 제주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여행자이며 동시에 생활자인 장단기 거주자들의 교집합인 ‘살아보는 여행’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리얼 제주인』


"제주는 엄청난 관광객이 오는 곳인데도 제대로 만들어진 정기간행물이 하나도 없다. 2013년 제주 관광객이 한 해 천만명이 넘었다. 하와이 연간 방문객이 860만 명이니 어머어마한 숫자다. 고민을 많이 하거나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결국 그거밖에 없다는 생각에 결국 잡지로 돌아왔다. <리얼제주 매거진 인 iiin : 이하 매거진 인>의 시작이었다" 매거진 인을 발행하는 재주상회 대표인 고선영씨의 인터뷰 글이다. 고대표는 이전 여러 잡지에서 여행 기자로 십여 년 간 일했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2010년에 제주에 정착을 했다. 제주 정착은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는 일이 비슷해서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처음 2,3년간은 10일에서 15일 정도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 보냈다. 하지만 점점 제주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우리나라 전역에 아름다운 곳은 참 많잖아요. 산도 좋고, 바다와 강도 좋고. 제주에는 가장 좋은 것들이 다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주에선 블로그를 검색해 가며 맛집 순례를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요리는 양념과 손맛이 좌우를 하는데 제주는 달라요. 워낙 식재료가 좋으니까 음식에 포장을 할 필요가 없어요. 제주 음식에 자극적인 고추나 마늘 양념보다는 담백한 된장이 주를 이루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제주의 참맛을 점점 알게 되면서 그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거라고는 잡지뿐인데, 제대로 된 지역 잡지가 있었더라면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토그래퍼인 남편과 산방산 LAZYBOX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하던 친구 부부, 예전 낸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와 함께 매거진 인을 창간하게 된다. 정부기금이 아닌 사비로 용감하게 시작한 그들은 첫 창간호 1만 권을 찍어서 5천 부는 전국으로 유통시키고, 5천 부를 도내에서 유통시키기로 했다. 당시 도내에 서점 34개가 있는데 대부분 중고등학교 앞에 있는 참고서 파는 책방이었다. 책을 꼭 서점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다섯 권, 열 권씩 가져다 놓고 팔겠다는 생각으로 아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여섯 곳을 중심으로 창간호를 비치했다. 당시 트위터가 뜨던 시절인데 트위터에 책이 입고됐다고 올리면 순식간에 소문이 나서 팔려 나갔다고 한다. 창간호부터 거의 완판을 계속 찍고 있어 수많은 잡지가 스러지는 시대에 '판매만으로 자립하는 잡지'라는 것이 그들의 자부심이다.


매거진 인은 1년에 4회,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는 계절지로 제주도 내 100여 곳의 카페, 상점, 숙소 및 지역을 소개로 하는 유료 잡지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 전역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광고는 가려 받았다고 한다. 후원이나 광고에 의존하게 되면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이 광고부터 줄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콘텐츠의 콘셉트는 '살아보는 여행'으로 잡았다. 독특한 제주 라이프 스타일과 세밀한 여행, 깊이 있는 시선으로 제주 문화를 들여다보며 새로 생긴 카페, 맛집, 사진 찍기 좋은 명소 같은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제주에 살고 싶거나 제주의 삶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담았다. 낡아 보이는 제주도 유원지, 구별조차 어려운 제주 앞바다에 사는 생선 종류, 파도 종류, 할망 상담소와 같은 네이티브 스피커까지 주제를 깊고 좁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소재 고갈의 걱정 없이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하는 작가들도 전부 제주 출신이거나 제주로 이주해 왔거나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잡지를 통해 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매거진 인을 발행하는 '재주상회'는 제주 기반의 문화콘텐츠 전문 회사로써 콘텐츠 제작 협업, 작가 에이전시, 전시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협업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로컬 편집샵인 '인 스토어 iiin+store', 제주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수윔제주 Swim Jeju>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를 이야기하는 창작자들의 플랫폼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주상회에서 발행하는 제주 단행본 시리즈인 '제주에書'는 자연, 문화, 인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독특하고 매력 넘치는 제주 이야기를 차곡차곡 기록하고, 섬살이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을 콘셉트로 매거진 인 에디터들이 객관적으로 편애하는 63곳의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책 <제주 카페>를 시작으로 모두 ‘제주만의 이야기’로 꾸며진 100권의 단행본을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고 및 인용

[디지털이 미래다 / 09 / 일과 오피스의 미래] 가족보다 직장동료 더 오래 보는 ‘회사 인간 시대’ 저물고 있다

제주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담은 사무 공간, 다음 스페이스닷원_월간디자인

현대건축콜렉션(3) 다음 ‘스페이스닷원’ _한국건설신문

매스스터디가 바라보는 제주도 다음 본사

다음카카오, 제주 인력 철수…아듀 '즐거운 실험'_한국경제

제주에만 잇(eat)수다_아는동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선영 vol.2 제주의 문화를 보존하는 잡지 <리얼제주 매거진 인 iiin>

제주의 새로운 바람을 전하다_NDNnews

리얼제주 매거진 인 ii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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