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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Jun 29. 2020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그 영혼의 저장고를 엿보다  2018.11.

글렌굴드의 전기를 읽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음악가가 설명하는 느낌들 - 베토벤 소나타 op.111을 연주하다 '십자가에 못박혔구나' 하며 울었다든지 멜로디에 깊이 파묻혀 순간 작곡가와 같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든지 하는 - 을 꼭 이해할 것만 같았다. 물리적으론 그래본 일이 없는데도.


현실에 나왔을 때는 고통스러워진다. 글로써 그 모든 아름다움을 상상해본 나는 건반에 손을 얹으면 내가 내는 소리와 조바심이 몹시 못마땅해 굉장히 울적해지고 만다. 때때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아니 내 몸에 들어왔었던 그 멜로디는 리듬은 어디로 달아나버린 것일까.

시간을 많이 들여 얻어지는 것이 귀함을 안다. 그런데 시간은 어떻게 만들지? 


아흔의 피아니스트에게 조바심내지 않는 법을 묻고 싶다. 저의 뱃속에서 끓는 욕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술가들은 어렵게 얻은 예술적 성취를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맞아요. 제 연주는 늘 다급하고 산만해요. 바로 제 일상이 그렇듯이요!

연주도 일상도 고른 숨으로 침착하게 정돈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운 나의 피아노


-

위근우씨의 페이스북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국사회에 '호의적 긴장관계'가 더 확산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상대방을 동등한 대화 주체로 인정하고 선의를 갖고 경청하되 굳이 일일이 동의해줄 필요는 없으며 문제점에 대해선 얼마든지 논박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공적 인간관계는 공사를 혼동하면서 호의나 긴장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견해였다. "호의를 택하면 습히 호형호제의 카르텔에 묶으려 하고, 긴장을 만들어내면 크게 당황하거나 대노한다."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공적 영역에서 의사소통 할 때 내가 견지해야 할 자세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의적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고 또 받아들이는 것.

책은 종교학자 앤드루 하비가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의와 존경이 넘치는 대화가 이어지는데, 한없이 부드럽던 시모어 번스타인이 중간 중간 인터뷰이 입장에서 확 벗어나 인터뷰어로 나서면서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때가 있다. 공적 영역에서의 그것을 강조한 위근우씨의 본래 의도와는 좀 다른 맥락이지만, 이 대화는 내게 '호의적 긴장관계'의 교본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아마 인터뷰를 읽다 보니 자연스레 취재원과의 대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나를 괴롭힌 부모를 용서할 것인가. 하비와 번스타인이 각자의 어머니, 아버지 얘길 할 때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하비는 영성을 얘기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은 은근히 번스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투다. 상처를 드러내는 대목이어서 "그래요" 하고 대충 넘어갈 법도 한데 번스타인은 물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듭 거듭 묻는다. "당신이 내게 말한 것을 정말로 믿나요? 당신의 행동이 정말 (어머니를) 사랑하고 용서해서가 아니라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럴때마다 나는 속이 시원한 한편 조금 괴로워서 아 할배 그만해 그만해 그냥 대충 넘어가 하고 말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는 고통을 결과론으로 옹호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를 성장시켰다 하더라도, 그 고통은 정당화될 수 없다. 다른 성장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삶은 더 나았을 것이다.

(번스타인은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추행을 당했다고 밝힌다.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는 꼭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처럼, 피아노를 사랑하는 번스타인에게 권투장갑을 던지며 윽박지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남자답게 굴어!' 하며 나를 질책할수록 나는 속으로 더 그에게 반대했고 그가 나에게 있는 아이같은 면을 결코 몰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을 내 인생에서 지웠어요. 소위 우정이라고 부르던 것을 차례로 끝장냈습니다."

넘쳐 흐르는 영혼의 저장고에서, 앎과 사랑을 평생 퍼내어 주고 싶다는 시모어 번스타인은 이렇게 단호한 태도로 자신을 지켜온 것이다. 잘못된 과거는 승화시키고 싶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대신 그것이 나를 더이상 건드리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고 똑바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을 그는 "반투명 돔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이 그를 지켜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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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가지고 육류며 해산물을 계속 먹고 있다. 요즘따라 단백질이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져 고기며 굴 조개 같은 것을 게걸스레 먹고 감사히 여긴다.

사람이 놓인 처지가 인구 수만큼 다 다르고 고유하듯이, 사람과 동물의 관계도 이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상상의 가능성도 열리고, 동물의 고통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번스타인은 고양이, 개, 다람쥐, 심지어 새와도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더 재밌는 것은 이 동물들 종 몇 종이 서로 한자리에 모여 호혜적 관계를 구성하기도 했다는 것. 개가 잡식동물이라고 해서 다람쥐를 잡아먹기만 하는게 아니라 돌보기도 하는 것이다!

생각 이상으로 인간도 동물도 복잡하다. 인간은 어느 순간이나 압제자, 포식자, 지배하려는 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겐 선과 악이 두루 존재하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이 되도록 선한 부분이 많이 나오게끔 하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이 동물에게까지 확장되어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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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진지하게 말해서 나는 천국이나 지옥, 내세같은 것은 믿지 않아요. 하지만 이 땅에서 천국의 순간을 누리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의 저장고에 접속하고, 고독 속에서 자신을 살찌우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혼의 친구와 동물들의 재능에 마음을 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욕망과 열정에 예술적인 방식으로 파고들어가서 그런 예술적 표현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영향을 주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이 소중한 이야기가 사치가 아니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배부른 이의 허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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