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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Jul 31. 2020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때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어느 페친께서 일부를 발췌해 올렸는데, 바로 내 책이다 싶었던 것이다.


머리는 공중에 띄우고, 팔은 무겁게 늘어뜨려 꼬리뼈에 달린 것처럼 두라고 했다.


상체가 늘상 난감하여 앉을 때나 설 때나 걸을 때나 당혹스러운 나에게 힌트가 될 것 같았다. 요가를 시작한 후로 꼬리뼈를 말아내리는, 나에겐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던 작업에 내내 주의를 기울여왔다. 팔을 꼬리뼈에 걸어두라니, 무슨 말일까, 신선했다.


이 책을 내게 불러들인 또다른 사람은 우치다 타츠루라고 할 수 있다. <소통하는 신체>에서 그가 어깨를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로봇의 팔을 상상하여 자신의 몸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 팔의 시작점은 어깨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몸을 그 틀 안에 가두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실로 우리는 이미지, 상상 그리고 환상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어떤 새로운 이미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언어적 상상력으로 잘 풀어낸, 그러니까 '설명' 이상의 어떤 구원에 목이 말랐던 것이다.


좋은 자세가 너무 갖고 싶었다. 무심한 채로, 잠은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당연한 채로, 배를 깔고 엎드려 어깨에 무게를 싣고 책장을 넘기는 습관을 가진 채로 너무 오래 살았으니까. 나는 앉아있으면 늘 턱을 괴었다. 손이 민망해서 턱에 둔 게 아니고  손에 무게를 실어 짐을 좀 덜어보려 한 것이다. 그러니까  목과 어깨는 진작에 지쳐버렸던 것이다.


저자(곽세라)는 앉을 때 머리를 '엉덩이발(좌골)' 위에 올려 두라고 조언한다.


책을 읽고 나서 걸을 때 나도 종종 '꼬리, 귀, 마시멜로우, 꼬리, 귀 마시멜로우' 하고 주문을 왼다. 물론 목도 머리도 어깨도 팔도 골반도 꼬리뼈도 양쪽 다리도 모두 여전히 난감하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중에 내가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힘을 들여 나의 속도로 걷는 법을 몸에 붙이고 나면, 저자의 표현을 넘어 나의 말로 그것을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불필요하게 힘을 주고 있는 게 아닌지 종종 점검하기 시작한 게 우선의 큰 수확이다.


힘을 빼야지 생각한 것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항상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있다는 것을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수영도 피아노도 힘을 빼야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데 힘을 빼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의 생활은, 눈 뜨면 이럭저럭 되는 것이어야지 평생 노력해 도달해야할 어떤 지점은 아닌 것 같다. 몇 년을 정신없이 달리다가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겪고 그것을 깨달았다.


전에는 아마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유능하고, 일을 착착 잘 처리하고, 시원시원하고, 활기찬,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있는, 어떤 멋있는 사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내가 상상하던 사람이 혹시 일에 매달려 종종대는, 그러면서 자신의 힘듦을 모른척하고 겉으로 멋있는 척 괜찮은 척 하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10년 후의 내가 이런 모습이었으면 한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워보이는 사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 열등감, 이런 것들을 내 안에 쌓아두고 싶지 않다.


저자는 마음이 급해질 때 마다 잠시 자기만의 '포켓'에 들어가 자세를 바로할 준비를 하고 나온다고 한다.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필요하다. 잠시 눈을 감아 시각은 잠시 닫아 둔다. 숨이 들고 나는 것을 느끼고 숨길을 방해하는 것을 치워낸다. 힘준 곳들을 편안하게 내려놓는다. 천천히, 천천히 해, 급할 것 없어.


글씨를 쓸 때도 간식을 씹어먹을 때도 나는 그것에 얼마나 열심인지. 펜을 쥐고 무언가를 쓸 나는 거의 펜에 매달려있다. 펜이 눌린 자국이 뒷면을 뚫고나갈 기세다.


집중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나는 때로 좋아한다. 하지만 잘못된 자세 안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요가수업에서 말이다. 일상에서도 그와 비슷한 때가 가끔 있다.


힘을 풀고 차분하게, 맑고 침착하게.


처음으로 리디북스에 가입해 전자책을 사 보았다.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가 맛깔나서 읽는 내내 기분 좋았다.


경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홀로 참석한 결혼식의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서, 출퇴근길의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가끔씩 다시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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