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Jun 30. 2018

세계반주 여행 루트

세계일주 자신 없다면 세계반주부터



무려 2년 전부터 짜기 시작한 세계여행 루트가 이제야 현실적으로 틀을 갖춰가고 있다. 구글맵에 찍힌 수많은 별들이 나를 오라하지만 그 모든 별들을 정복할 수는 없는 노릇. 내가 세운 여행의 원칙 안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루트로 수정의 수정을 거듭했다. 일단 여자 혼자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그 겁나는 타이틀 때문에 걱정할 수많은 내 주변 사람들과 또 아직은 프로여행러의 강심장 레벨에 도달하지 못한 나로 인해, 딱 들어도 위험할 것 같은 ㅡ사실은 가장 가길 소망했던ㅡ 나라들을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언젠가는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 굳게 믿으)


그렇게 내가 선택한 대륙은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지역- 이렇게 북반구 여행이 되었다. 사실상 세계일주가 아니라 세계반주를 하게 되는 셈이다. 국가를 선택하기에 앞서 삼았던 나의 기준은 세 가지였다.


첫째, 예방접종과 침낭이 필요 없는 나라
둘째, 치안이 나쁘지 않은 나라
셋째, 내가 보고자 하는 공간들이 많은 나라


예방접종이 필수인 나라는 곧 질병과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일 것이고, 침낭이 필요한 곳도 시설이나 환경이 썩 쾌적하지 않은 나라일 것이다. 이런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예방접종과 침낭 구매를 위한 돈도 더 들테고. 그리고 이런 나라들은 대개 치안이 좋지 않아서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말리거나 걱정할 것이 뻔했다. 남을 위해 여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목숨이 내 것만은 아니라 생각하기에 나는 이번 여행에서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보고자 하는 공간이라 함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서점, 문화공간 등을 말한다. 사실 아직 논문을 쓰지 않은 채 휴학을 감행하고 떠나는 여행이기에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훌훌 털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꾹꾹 눌러담는 여행이 될 것만 같다.



아마도 세번째 기준에 따라 유럽일주가 이번 세계반주 여행의 가장 핵심이 될텐데, 사실 유럽을 아무리 길게 여행하고 싶어도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쉥겐조약. 쉥겐조약이란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에 체결된 국경개방조약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유럽 여행을 할 때는 대부분 국가 이동 시 특별히 국경에서 검문검색이나 여권검사를 하지 않는다. 모두 이 쉥겐조약 덕분이다. 처음 입국한 국가에서만 심사를 받고 나면 6개월 내 최대 90일까지 회원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리히텐슈타인, 몰타,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아이슬란드,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까지 총 26개국이 현재 쉥겐조약에 가입이 되어있다. 즉 우리가 주로 여행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유명한 나라들은 거의 다 쉥겐조약에 가입이 되어있다. (이와 관련된 사항은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쉥겐국가 최종 출국일을 기준으로 이전 180일 이내에 90일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하지만 이는 곧 원칙적으로는 연속 90일 이상 동안은 쉥겐국가에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체결한 양자사증면제협정에 따라서는 더 오랜 기간 머물 수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양자사증면제협정을 쉥겐조약보다 더 우선 적용하는 국가들이 있으나 사실 반드시 우선 적용한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한다. 막상 현장에서는 출입국관리 담당자 맘이라나. 이래저래 90일 이상을 여행하려 하니 따져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또 이렇게 쉥겐국가 내에서는 별도의 출입국심사가 없어서 체류사실을 증빙하려면 체류허가서나 교통, 숙박, 영수증 등을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90일 이내로 여행할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 이상 여행일이 초과될 경우에는 향후 쉥겐국가 입국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니- 나는 굳이 여행 내내 그 일을 염려하는 수고로움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꼭 장기간 유럽에 머물고 싶다면 한 국가의 비자를 받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도저도 귀찮아진 나머지 나는 그냥 쉥겐국가에서 90일을 초과하지 않도록 루트를 짜기로 했다.


대신 비쉥겐국가인 영국에서 가능한 오래 머물기로 했다. 사실 우리집 다락방에 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온통 영국기로 도배되어 있다. 영국이 비쉥겐국인 것은 어쩌면 내게 행운이었다. 인생의 첫 유럽여행을 영국으로 정한 것은 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몽골을 시작으로 러시아를 지나 영국으로 향하는 루트로 드디어 여행의 틀을 잡게 되었다. 아직 모든 루트를 정확히 짠 것은 아니지만 쉥겐조약을 신경 쓰지 않고 유럽에서 머물 수 있는 최대한 머문 후에는 다시 미국으로 향할 생각이다.



처음에는 1년을 계획한 세계일주였지만 여러가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나의 이번 여행은 5개월 정도의 세계반주가 될 것 같다. (돌아오는 티켓은 아직 없지만.) 당장 처음부터 세계일주가 자신 없다면 세계반주부터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같은 장기여행의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까 싶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잘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니까. 방랑이 아니라 방문임을 잘 기억해야지.



내맘대로 세계반주,

부디 이 걸음이 내 인생의 멋진 반주가 되기를 기대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균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