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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Jan 29. 2019

일인분의 유물을 줍다가

빛나는 당신을 발견했어요



어른이 되어야 '삶'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생기는 줄 알았다. 어릴 때는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인생을 오래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과는 별개로 나는 나름 꾸준히 기록하는 '삶'을 살아왔고, 제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시시콜콜한 삶의 기록들이 한때는 미래였던 지금의 삶을 사는 나에게 빛나는 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습관적으로 늘 기록을 해왔지만 그 기록물을 꺼내어보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한 번 서랍을 정리할 때나 물건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할 때뿐이었다. 사실 모든 것을 세세히 기억하며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일 만큼. 언젠가부터는 기록을 온라인으로 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과거의 기록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지나간 일을 뒤적거릴 여유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해두었던 기록들은 단지 기록할 당시의 만족을 위해 잠시 존재했다가 곧 휘발되었고 쓸없는 유물로 전락했다. 그러나 잊고 있었던 그 유물을 어느 날 우연히 발견했을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억 저 편에 접어두었던 시간의 향기가 새어 나와 나의 삶을 자극하고 간섭했다. 어떤 날은 나를 웃게 했고 또 어떤 날은 나를 울게 했다. 쓸모없던 유물이 그 어떤 화려하고 실용적인 물건보다 내 마음을 세밀하게 만졌다. 메마른 땅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건조한 나의 삶을 추억에 촉촉이 젖어들게 했다.



얼마 전 10년 후의 나에게 썼던 10년 전의 편지를 읽으며 다짐했다.  단골 식당이 사라진 거리를 보았을 때, 서먹해진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지 않을 때, 잊고 지냈던 이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질 때,  내 꿈이 잘 자라왔는지 점검하고 싶을 때, 행복했던 순간을 생생히 떠올리고 싶을 때, 힘든 시간을 어떻게 잘 버텨왔는지 스스로 위안 삼고 싶을 때, 그러니까 지금의 내게 정말 괜찮냐고 묻고 싶을 때- 조용히 나의 유물을 꺼내어보기로.


누구에게나 삶이 있다. 어리든 못났든. 또한 모든 순간에는 소중한 빛이 있다. 평생 기억하고 싶은 날이나 영원히 잊고 싶은 날에도. 그 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반짝인다. 그때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더해지면 알게 된다. 오늘을 기록하는 일은 바로 그 빛을 새겨두는 일. 별거 없을지라도 꾸역꾸역 나의 오늘을 기록해야 할 이유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어떤 날에 특별한 순간으로 빛날 테니까.


여전히 어리고 모자라지만 오늘도 난 부지런히 일인분의 유물을 만든다. 그 어떤 날의 빛나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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