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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Jun 08. 2019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너



가게를 열었다. 어느 기업에든 들어가 영업 이익을 위해 열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지만, 가게를 열어 물건을 팔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맞을지. 나는 어쩌다 창업을 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장대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았다. 준비 없이 2019년을 맞았고, 어느새 벌써 절반이 흘러간다. 그 사이 내 인생은 계획도 없이 잘도 흘러갔다. 장기여행을 떠나고 돌아와 긴 시간 몸 담았던 공동체를 떠났고,  대체 불가능하다 여겼던 소중한 이도 기약 없이 떠나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떠나는 일은 지친다는 듯, 가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겠다는 포부를 담은  가게를 차리게 된 거다. 정말 갑자기.



세 번의 피를 봤다. 한 번은 가게 바깥 벽에 단 네모난 돌출간판 모서리에 정수리를 제대로 박았다. 만화 영화 속 그림처럼 빙글빙글 별이 보였고, 그 와중에 가게 안의 놀란 손님도 보였고  쥐어 잡은 머리통에서 흘러나오는 피도 보였다. 피가 나와 그나마 다행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혈을 했고 다행히 상처는 서너 일이 지나니 아물었다.  두 번째는 내 방에서였다. 한 번도 위협적인 적 없었던 둥그스름하고 낮은 침대 기둥에  어쩐 일로 나의 정강이가 진격했고, 곧  정강이뼈 위로 피가 고여 살갗에 비쳤다. 마지막은 그놈의 손톱. 전에는 격하게 세수하다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콧속을 뚫어버려 잔뜩 피를 쏟았었는데, 이번에는 손톱으로 얼굴에 생채기를 냈다. 세수는 마저 해야겠고 볼때기는 따끔하고 상처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에 귀찮아졌다.



친구를 만났다. 우연히 가게 맞은편 골목에 살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도 만났고, 이제는 아기 엄마가 된 혹은 직장 생활에 찌들어 있는 오래된 친구도 만났다. 평균 20년의 세월 동안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문득 신비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아직은  낯선 내 가게에 함께 앉아 그들과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이  묘했다.  사실 그닥 먼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온 적은 없었지만 어떠한 이야기를 나눠도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요상했다. 이미 서른을 넘긴 우리들은 더 이상 호들갑스럽게 세월을 운운하지는 않았다. 그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각자의 지금을 나눌 뿐이었다.



고양이를 만났다. 지금껏 태어나 만져본 고양이 중에 가장 작고 어리고 귀여운 고양이였다. 우리 동네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였다. 어미가 버리고 간 고양이를 지하철역 입구 앞의 분식집 아저씨가 데려다 기르신다 했다. 젖을 먹지 못해 잘 걷지도 못하는 고양이에게 초유를 사다 먹이고 걸음마 연습을 시키셨다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고양이에게 저마다의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저씨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퍽 즐거워 보이셨다. 그  분식집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고양이와 실컷 놀다가 돌아왔다. 며칠 후에 길에서 만났다 하여 길순이라 이름 지어진 그 고양이를 보려고 분식집을 다시 찾아갔는데, 아저씨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이상한 여자가 고양이를 빌미로 아저씨에게 시비를 걸어 폭력까지 오가는 바람에 경찰서까지 다녀오셨다는 거다. 결국 길순이는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아저씨는 분노와 우울함으로 며칠을 지내신 모양이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나의 끈질긴 지론. 그래서인지 자꾸 모르는 일만 생기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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