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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젠 Nov 25. 2020

겨울서점: 유튜브로 책 권하는 사람


애서와

독서 사이


최근에 '애서'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책을 좋아함'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독서'에 비해 많이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애서가 독서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보다 정확히 말해, 독서는 애서의 부분집합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달리 말하면 책을 즐기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 말고도 다양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애서와 독서는 잘 구분되지 않는 듯하다. 다른 취미와 비교하면 유독 애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상상력은 묘하게 경직된다. 가령 누군가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유와 그것을 즐기는 방식에 대해 제법 다양한 요소들을 떠올린다. 그는 자동차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그는 차체의 디자인, 금속을 가공해 만들어낸 섬세한 선과 면의 형태를 사랑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애정은 자동차를 현대 기계공학의 정수라고 여기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애정의 대상이 책으로 바뀌면, 자동차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여러 맥락들은 어디론가 모두 날아가버리고 그것이 '글'이라는 데만 유난히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글을 읽는 행위는 문자의 발명 이래로 언제나, 지나치게 특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누군가 책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사색을 좋아하고, 높은 지적 수준을 갖췄으며, 소위 '마음의 양식'이라든지 '침범할 수 없는 내면' 등의 수사로 대표되는 어떤 존엄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숱한 문단 내 성폭력 고발들이 말해주고 있다 *).


물론 책의 본령은 읽히는 것이다. 책을 즐기는 방식 중 독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시선이 때로는 취미로서의 '애서'를 평범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디저트나 재즈나 러닝을 좋아하듯 그냥 책 자체를 좋아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의 디자인을, 타이포그래피를, 종이의 냄새나 질감을, 책을 읽는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책을 사거나 수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 구매조차 인터넷 서점의 굿즈가 목적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애서라는 문화의 구성 요소다.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든다는 것



브런치를 개설하고 '유튜브 채널을 추천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겨울서점]의 크리에이터 김겨울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운영 경험을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유유, 2019)이라는 책으로 엮어낸 바 있다. 제목처럼 '책 권하는 유튜브'를 다시 글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쩐지 점대칭도형을 완성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은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북튜브'인 [겨울서점]의 메인 콘텐츠를 요약한 정직하고 평이한 제목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제까지 보면 생각지 못했던 행간이 드러난다. [보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관하여]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는 그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유튜브 시청자들은 이미 책보다 재미있는 걸 보고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면 그들이 기꺼이 책장을 펼치도록 만들 것인가?'


(……) 이를테면 뷰티나 게임, 먹방, 키즈, 영화 등의 분야와는 달리 북튜브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책의 모든 장면을 영상화해서 촬영할 수는 없으니까요. (……) 그렇다고 책의 표지만 보여 주기에는 뭔가 심심합니다. 책을 펼쳐서 그냥 보여 주는 건 저작권 문제도 있을 뿐더러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화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혹은 '부족한 화면을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가 다른 유튜브 채널과 구별되는 북튜브의 추가적인 문제입니다.

김겨울,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과연 그러하다. 책을 가지고 어떤 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영상이 아니라 음성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예컨대 소설가 김영하는 일찍이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팟캐스트의 메인 콘텐츠는 낭독이다. 작가 김영하가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책의 한 소절을 읽고 가끔 코멘트를 덧붙인다. 묵독이 유행하기 전까지 책은 역사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책이라는 소재와 팟캐스트(=라디오)라는 음성 매체의 궁합은 필연으로까지 느껴진다. 여기에 영상을 더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불필요해 보인다.


[겨울서점]의 영상들을 둘러보면 이 고민에 대해 크리에이터가 어떤 식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보인다. 그것은 책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모두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바로 '애서'의 모습이다. 물론 영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책 자체에 대한 리뷰지만, 그 밖의 책과 관련된 어떤 것이든 '북튜브'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겨울서점]은 보여준다. 독서 루틴 소개, 책 언박싱 영상, 40분 동안 책장 정리하는 ASMR, 호텔에 가서 책만 읽는 브이로그, 독서대 리뷰남의 집 책장 탐방 등.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과, 책이라는 정적인 소재로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접근 중 무엇이 우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결과적으로 [겨울서점]이 지금, 누구든 손바닥 위에서 4K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2020년대에 굳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거창하게 독서의 의미 같은 것을 찾지 않는다. 달력이 아무 이유 없이 넘어가듯이 계속해서 책을 읽고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척추 건강이 염려되므로 좋은 자세에 도움이 되는 독서대를 추천하고, 책을 읽을 때 어떤 음료를 마시는지 이야기하고, 새로 산 신간이 어떤 점 때문에 못 견디게 좋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사서 모은 책들이 쌓인 책장을 보며 거기에 어떤 사연이 얽혀 있는지 소개한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할 시간에 그는 이미 책을 읽고 있다.



저는 겨울서점님 영상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건, 책하고 일상하고 분리돼서 책 읽는 진지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 책이 어떻게 섞여있는지 굉장히 잘 보여주는 영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하거든요.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북토크 with 이다혜 작가님!] 중 이다혜 작가의 코멘트


무언가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관념이든 그것이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책을 손에 들고 읽는 사람의 모습은 독서의 효용에 대해 말하는 그 어떤 수사보다도 설득력 있게, 책을 읽는 경험이 좋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만 본다면, 이 영상



[겨울서점]의 구독자가 유입되는 주요한 콘텐츠는 아무래도 조회수 1위와 2위인 [내 말을 상대방의 귀에 꽂는 발음 팁]과 [20년차 책덕후의 독서 루틴? 겨울서점 주인장이 책 읽는 법]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영상은 [남의 집 책장을 구경해보자 이신애편]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책장을 구경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영상에서는 김겨울의 오랜 친구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이신애의 책장을 소개한다. 이 영상을 보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MC 워너비, [독서로 내면을 기른다는 말]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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