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 답하겠다."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종종 본다. 아니, 실은 흔하게 본다. 나는 이런 건 책 읽기를 미화하는 걸 넘어 책 읽기에 관한 미신을 퍼트리는 말이라 생각한다. 이런 말이 이치에 닿으려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내면이 귀해야 한다. 책 읽는 걸 넘어 책 쓰기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 그래서 머릿속에 숱한 글 뭉치를 넣고 다니는 사람 중 내면이 경박하고 비천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건 쉽게 입증할 수 있다. 몇 년 전 문화계 내 성폭력 고발, 미투 운동에서 문단의 실상은 폭로의 중심부였다. 다른 분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다.
척 생각해도 내면은 모호한 말이다. 독서는 활자를 머리로 이해하는 인지 작용이다. 이것이 사람의 성품으로 얼마나 연결될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고, 더 구체적인 변수들이 있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다면 책과 내면의 관계를 아름답게 꾸미는 능력은 기를 수 있다. 그리고 글에 관한 거룩한 미사여구가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추행을 가려주는 커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냥 책 읽기가 주는 현실적인 이득을 말하는 게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 사람의 인격과 정신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하는 건 닳고 닳은 말 꾸밈이다. 다른 모든 문화 예술이 그렇지만, 문학 그 자체가 삶이 될 수는 없고 삶 보다 위에 있는 물건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런 것들은 삶의 부산물일 뿐이고 삶 자체에 비하면 하찮다. 문학이 곧 삶인 사람들, 그러니까 문학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문학이 삶과 맞먹는 대상일지 모르겠으나, 남들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