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다큐멘터리 [욕의 품격] 리뷰
※ 성인인증이 필요한 콘텐츠의 리뷰입니다.
※ 다루는 콘텐츠의 특성상 영어/한국어 비속어가 본문에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 중 이런 것이 있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간 한국인 학생이 딸기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든 나머지 욕을 했다. 대놓고 욕을 하니 배덕감과 함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국과 달리 알아듣는 사람도 없으니, 점점 큰 소리로 자주 욕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내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욕을 하며 일하고 있던 학생에게 농장주가 소리쳤다.
No sibal, keep going!
자매품으로, 일본에 워홀을 갔던 한국인의 별명이 '시바루 쨩'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이지만 '씨발'은 이제 제법 세계적으로 알려진 욕설이라고 한다. 한국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탓일까. 외국에 나가 알아 들을 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천박한 말을 썼다간 국격 하락에 일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한국어 표현을 꼽으면 1위 '안녕하세요'와 2위 '오빠'부터 시작해 '씨발'이 한 11위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어에서 욕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정말 많은 욕설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욕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가끔 심의 때문에 욕설이 나오지 않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그것들은 마치 욕이 존재하지 않는 평행우주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욕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써본 적은 있지만 공적인 세계에서는 마치 욕설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정제된 언어를 쓰는 것은 사람 사이에 필요한 예의범절이자 시민으로서의 양식이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한 부분이 송두리째 들어내진 모국어가 일종의 괴리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욕은 이처럼 우리에게 여러 복잡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욕을 많이 쓰는 것과 별개로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척해야 하는 사정은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욕의 품격History of swear words]은 영어권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여섯 개의 비속어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한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호스트를 맡고 코미디언, 배우, 인지과학자, 언어학자, 여성학 교수, 영화평론가, 작가, 사전 편찬자와의 인터뷰로 꾸려지는 이 쇼는 당연하게도 19금이다. 성인 등급이라는 안전장치와 욕설에 대한 다큐라는 명분 아래 퍽Fuck, 쉿Shit, 빗치Bitch, 딕Dick, 푸시Pussy, 댐Damn이라는 비속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온다.
다큐를 보며 감탄하게 되는 지점은 욕에 대한 탐구가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연결되는 순간이다. 욕설 연구는 기본적으로 그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밝히는 어원학이자 역사언어학이지만, 우리가 욕을 왜 하고 욕을 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얻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인지과학과 심리학을 건드린다. 한편 욕의 역사는 그것을 금해왔던 검열과 통제, 그에 반하는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며, '빗치'나 '푸시'처럼 여성과 관련된 욕설을 이야기할 때는 당연히 페미니즘을 우회할 수 없다.
많은 정보량과 지적인 접근과는 별개로, 20분이라는 부담없는 분량으로 구성된 이 쇼는 한 편 한 편이 코미디이기도 하다. 아예 도입부에 뜨는 자막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 시리즈'이다. 말쑥한 정장을 빼 입고 "왜 하필 Dick이라는 이름이 욕이 되었을까요? Nick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따위의 말장난을 웃음기 없이 구사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상상해보라. '퍽Fuck'과 '머더퍽Motherfuck'이 결혼해 '퍽오프Fuck Off'와 '퍽보이Fuccboi'를 낳았다는 수상한 이론을 소개하는 '퍽 가계도Fuck Family Tree'가 나오는가 하면, '쉿Shit'을 맛깔나게 발음해 뜨게 된 배우 아이자이어 휘틀록은 본인이 세계에서 가장 긴 '쉿'을 발음할 수 있다며 즉석에서 신기록 수립에 도전한다.
물론 영어권의 욕을 일상에서 들을 일이 없는 한국인 시청자에게 [욕의 품격]은 썩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각각에 대응하는 한국어 욕을 떠올리며 봤지만, 역시 디테일한 문화적 배경과 뉘앙스까지 온전히 번역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딕Dick'은 한국어 '좆' 정도에 대응하지만, 이것이 백인 남자에게 흔히 사용되는 인명 '리처드'의 줄임말이기도 하다는 중의적 맥락은 '좆'에 없다(물론 왜 리처드가 욕이 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이 해당 에피소드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욕은 도구 상자에 있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배우 닉 오퍼먼
그러나 결국 공감하게 되는 지점은 우리가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욕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다. 욕은 분명히 천박하고 때로는 불쾌하지만, 동시에 재미있고 기분 좋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낸다. 실제로 욕은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임상 실험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욕의 품격]은 욕설에 대해 덮어놓고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치부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용례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적확한 상황에 이용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는 교훈을 준다. 그것은 '퍽'이든 '씨발'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