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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콜린 Jan 30. 2018

무미수필. 호흡을 맞추다

아가를 재운다는 것은 아가의 호흡을 느릿하고 규칙적인 '잠의 호흡'으로 서서히 유도해 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데뷔한 지 얼마 안된 아가는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처럼 생명의 에너지가 과할 정도로 넘친다. 아가를 한 시간 이상 케어해 본 사람은 그 빨빨거리는 생동감에 기진맥진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가의 체온이 어른 보다 뜨겁고 아가의 맥박이 어른 보다 빨리 뛰는 것처럼 아가의 평소 호흡은 어른 보다 역동적이다. 그런 역동적인 호흡을 느릿한 잠의 호흡으로 유도해 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품에 안고 흔들흔들하는 리듬감, 손으로 등을 쓰담쓰담하는 속도감, 입으로 '쉬쉬' 같은 소리를 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해서 만드는 음감, 이 세 가지를 삼위일체 시켜 우선 현재의 아가의 호흡에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주파수가 턱하니 맞추어 지면 서서히 느리게, 규칙성을 부여해 나가야 한다. 아가는 말도 못하니 온 신경을 동원하여 아가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잠들기 전 꼭 한 번은 이유 없이 가열차게 울며 잠투정을 한다. 거의 다 된 것 같은 순간에도 한 번만 삐끗하면 30분 넘게 들인 공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아가를 재우는 이유는 내 자식이니 본능적으로 사랑스러워서, 아가가 자야 내가 편해지기 때문도 있지만, 아가가 잠들 때까지 호흡을 맞추어 가는 그 섬세하고 농밀한 집중의 과정이 짜릿하고 뭉클한 감동 같은 것을 주기 때문도 있다.


요즘의 나는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 중에 '호흡을 맞추어 가는 과정'의 즐거움에 눈떠 가고 있는 것 같다. 합창단의 화음이 절묘하게 맞추어졌을 때, 밴드의 합주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옆 사람과의 대화가 상대방의 말끝을 끊어 먹지 않고 적절하게 섞여들어 갈 때, 지금 읽고 있는 책 속의 문장의 리듬감이 내가 속으로 글을 읽는 리듬감과 일치했을 때, 연인과의 섹스가 적절한 강약으로 서서히 무르익어 감을 느낄 때, 프로젝트 업무가 조화롭게 착착 굴러가는 듯한 막연한 느낌이 들 때. 각자의 호흡이 어우러지는 절묘한 균형의 감각을 느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계의 시작은 매력으로 이루어지지만 관계의 지속은 '호흡 맞추기'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동료이든 오랫 동안 좋은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선 그 사람의 호흡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지. 그 사람의 호흡의 속도는 얼마나 빠르며 그 호흡은 또한 어떤 주기의 리듬감을 가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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