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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자 Jun 18. 2024

즐거워하는 것을 오해했네요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서에는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흔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한다.


나는 두 번째 구절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 언뜻 읽으면, 내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려야 되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면 아니다.


"그분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류의 최초에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에서 아담은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했을까.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들을 아담 앞에 이끌고 가셨다. 그리고 아담을 각 생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 어떠한 것을 정의한다는 것은 깊은 관찰과 고민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름 짓는 것을 명령하지 않으셨다.


 아담의 이름을 짓는 행위는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그의 주위에 동물들을 이끌고 가셨다. 아담은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과정은 상상해 보건대,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물도 있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감탄하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표현이 이름을 짓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이름을 짓는 행위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 즉 아담은 그 동물들을 보면서 기억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하였고, 그것이 이름으로 나타났다.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 주변에 즐거움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길 희망하시고 주변으로 이끌고 가신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나


우리 주변에는 즐거움만 있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야고보서 1:13 - 14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 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고단과 시험은 나의 욕심의 결과들인 경우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시험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주인이고, 창조자임을 구분 짓는 유일한 규칙이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잃는 고통은 그 규칙을 어기는 것에서 시작했고, 욕심은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사라가 발견한 즐거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100세 아들을 낳았다. 그저 믿음으로 낳은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 99세에 사라에게 나타나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라는 비웃으며, 어떻게 아들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그가 웃은 것을 보시고, 사라에게 네가 웃었다고 하자, 사라는 놀라서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100세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은 이삭이었다.

이삭의 뜻은 "웃음"이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라고 사라는 고백한다.


하나님의 계획, 그것은 즐거움의 계획이다. 그것에 참여하고,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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