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위 사진과 같은 택지지구의 토지이용계획도를 다들 한 번 쯤 본 적이 있으실 거다. 방사형 또는 격자형 도로와 수로 등이 기본 골격을 이루고 주변으로 주택용지, 상업, 업무, 근생용지, 교육, 의료, 행정, 녹지 등의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중심되는 위치에 상업, 업무, 행정 영역이 배치되고 주변으로 학교들이 중심이 된 근린주구들이 몇 개의 영역으로 배치된다. 보통의 택지들이 이와 같은 배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이다.
주택지는 대부분이 공동주택지이며, 아주 일부가 단독주택지 (단독주택지, 블럭형단독주택지, 점포주택지 등)로 할애된다. 이중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이주자택지 (점포주택용지)이다. 토지조성비의 80% 선에서 원주민에게 분양되는 게 보통인데, 거기에 어마어마한 p(프리미엄)가 붙어 거래가 되고 있다. 난 솔직히 그 어마어마한 p에 대해 의문이 든다.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가며 토지를 매입하는 심리가 그래도 싸다여서 인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심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난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본다.
개발공사나 LH에서 공급하는 택지. 개발공사나 LH는 공기업이고 기업이다 보니 절대 손해 보는 짓은 안 한다. 토지조성원가라는 게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잣대가 되는지 좀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토지조성원가에 이것저것 비용이 붙는 상황이라면 원가에 이미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토지매입비 + 건축비의 상황이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최초 이주자택지 수분양자가 집을 짓는다 했을 때 발생하는 수익률이 보통의 부동산 수익률 선에서 크게 높지 않다고 보면 그리 싸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거기에 P가 분양가에 준하는 수준으로 높다면, 수익률은.... 글쎄다.
대단한 수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는 높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한다? 여기서 '안정적이다'라는 낙관적 기대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르겠다. 원하는 가격으로 상가든, 주택이든 임대가 다 나간 상태, 공실률 제로일 때와 기대 가격이 맞춰 졌을 때의 얘기다. 점포주택지는 말 그대로 점포주택을 넣을 수 있는 주택지라는 얘기고 꼭 넣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점포주택지는 원주민들이 원래의 터전에서 먹고살던 상황을 고려해 점포를 끼워 넣은 상품이다. 도시계획 입안자들이 이곳이 대단한 카페거리나 음식점들이 들어설 것을 기대하고 만든 상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린주구에서 소비될 정도의 상태. 그게 점포주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점포의 수준이다.
그런데 많은 토지 소유주들이 마치 지어만 놓으면
카페거리가 되고 맛집골목이 될 거라는 환상을 가진다.
일단 꿈 깨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그건 몇몇 주택지 주변의 상황과 그림이 맞아 떨어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이다. 차를 타고 외부에서 들어와 카페에서 소비하고 가는 행태가 벌어지는 상황은 광교 같은 극히 일부의 상황인 것이다. 우리가 진행했던 용인 서천지구 같은 경우도 대로변의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년이 넘게 공실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 도시가 자리를 잡으면 점포가 활성화될 거라는 기대도 좀 막연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주택이지 뭘 입 아프게 물어? 할 거다. 하지만 점포주택지를 소유한 사람의 속내는 다를 수 있다. 점포의 장사가 아주아주 잘되고 동네도 그런 상가들로 꽉 차 있기를 바라며, 덕분에 임대료도 좀 올라주고 점포에 오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런 상황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 치고, 그렇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집주인, 세입자)은 정말 좋을까? 외부에서 오는 차량들의 주차로 몸살을 앓고, 저녁 장사하는 카페들로 동네는 대낮같이 환하며, 가끔은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도 들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뭐, 집주인이야 높은 임대료 생각하며 참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세입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상가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주거환경의 질은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살기 좋은 동네라는 인식에서 멀어지면 자연히 임대가(전세, 월세)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상가 임대료는 오르는데, 집의 임대료는 떨어지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이냐?
상가주택에 상가를 넣지 말라는 얘기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거다. 점포주택의 주기능은 주택이며, 점포는 부가적 기능일 뿐이라는 것. 점포주택의 모든 집들이 건폐율 맥스의 상가를 꼭 계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각 택지마다 다르겠지만, 점포주택에서 점포를 넣지 않았을 경우 세대수를 늘려 주기도 한다) 상가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정작 사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동네가 될 수도 있다는 것.
필지면적: 70~80평 내외
층수: 지상3층 제한
용도: 1층과 지하층에 한해서 연면적의 40% 이내로 상가설치 허용.
3가구까지 다가구주택 허용.
(택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느나 대부분 3가구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건폐율: 60%
용적률: 180%
다락 설치는 허용하나 다락에 대한 세부 규정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지붕은 일정 비율 이상 경사지붕을 설치. 여기에 최대의 면적확보와 최소의 공사비 조건이 더해져 아래와 같은 점포주택의 유형이 일반화되었다.
각각의 택지마다 입고 있는 옷의 형태만 다를 뿐 90% 이상이 위의 구성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저런 형태가 거주환경과 수익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상태라 판단되어서 건축주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유형일지, 아님 이른바 김사장(업자)들에 의해 별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부여된 유형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좀, 아니 문제가 많아 보인다.
하나씩 짚어 보자면, 소유하는 건축주는 단독주택이라 인식할지 모르지만 임차인은 도시에서 보던 빌라보다는 쬐금 더 거주 환경이 나은 빌라라고 인식한다는 게 그 첫 번째이다.
현재까지 거주유형의 선호도를 보자면 아파트에 이어 단독주택의 순이다. 요 몇 년 새 단독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는 다가구를 포함한 포괄적인 단독주택을 의미하기보다는 1가구의 온전한 단독을 가정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가구, 다세대(빌라)를 선호해서 살겠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높은 임대가 혹은 매매가를 감당하지 못해 차선으로 선택하는 어쩔 수 없음의 수동적 선택지일 뿐인 것이다.
쾌적한 도시조직이 구비된 택지에서
굳이 빌라의 조악한 형식을 빌려와
하향 평준화 시켜버린 것이 지금의 점포주택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점포주택지는 토지의 조건이나 면적이 유사함으로 위와 같은 형식으로는 가구의 면적이나 평면 형태를 다양화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아파트인 척 단독주택 같지 않은 아파트 같은 빌라. 투룸 전세에 얼마, 쓰리룸 전세에 얼마, 다락 있는 삼층 얼마로 가격이 이미 매겨져 버리는, 최대의 면적을 뽑아 최대의 임대수익을 노렸던 그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나 건축주나 뭔가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 택지가 조성되고 분양이 시작되면, 어느샌가 나부끼는 플래카드들. '토지+건축비 포함 얼마에 내 집 장만하세요'. '전세금이면 내 집도 생기고 임대수익도 올릴 수 있어요.' 플래카드를 거는 주체는 김사장일 때도 있고 지역부동산일 때도 있다. 여기에서 강한 의구심이 생긴다. 혹시 저 사람들이 모두 한통속이 아닐까? 동일인은 아니지만 동일한 목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거나 기생하며 사는 거머리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
지역부동산과 김사장(업자)은 모종의 전략적 제휴와 암묵적 합의를 통해 택지에 적용되는 지구단위 제한사항, 조례 등을 파악해 대략의 가구수와 면적을 습관적으로 정해 버린다. 이들이 제시하는 최대의 면적, 최다의 방갯수 등의 정량적 판단이 마치 정답 인양 건축주에게 강요되고, 건축주는 그 정량을 맞추는 것만이 최대의 수익률을 담보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의해 이른바 지역의 시세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기들이 팔기 쉽게, 자기들이 짓기 편하게 재단하고 나누는 구태를 벌이고, 집의 구성은 아랑곳없고 무조건 방을 쑤셔 넣고, '이만큼 면적에 방이 이만큼이나 나왔어요', '평면이 잘빠졌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상황이, 뭔가 사기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복덕방에게는 면적과 방갯수, 향 이외의 정량적 판단이 불가한, 주거환경을 높이는 가치는 불필요하다. 가격을 매기기에도 애매하며, 같은 상품군(상가주택)에 너무 다양성이 많으면 팔기(임대)에도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적당히 아파트보다는 가격이 낮고 비좁아 터진 방이더라도 구비된 상품( 아파트 보다 거주환경을 부러 저하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되면 김사장에겐 니나노이다. 빵틀에 빵 찍어내 듯, 외부 화장만 조금씩 달리해 지으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솔직히 거기에 일조하는 설계자들이 있으니, 나 역시 사기방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우리부터가 그들이 짜놓은 상황논리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은 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제 붐이 일고 있는 상가주택이 더 망가지기 전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나서서 건축주들을 설득하고 좀 더 다양한 주택 형식을 개발하고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글. 투닷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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