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도시에서 배우는 도시재생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군은 미츠비시 항공기 제작소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일본의 중심도시를 폭격해간다. 그리고 남은 오카야마의 오래된 도시 쿠라시키. 쿠라시키는 강과 이를 잇는 수로를 중심으로 각종 물류창고와 뱃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거리가 발달하면서 형성된 도시다. 과거 교통의 요지였던 이곳에 4곳의 폭격이 예정된 상황. 하지만 미군의 공습 직전 종전이 선언되면서 쿠라시키는 태평양 전쟁의 피해로부터 빗겨가 오래된 전통가옥과 도시구조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비록 도시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골목과 민가 등 전통있는 옛 도시구조를 가진 쿠라시키는 공장과 대형빌딩, 자동차 사회로 대변되는 일본 고도성장기에 기업과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소외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주민이 이탈하고 빈집이 늘어가며 도심이 쇠퇴하가던 중, 쿠라시키에서 태어난 건축가 ‘나라무라 토우루’를 중심으로 하는 6명의 건축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 자신들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던 이들은 ‘낡은 민가를 모던 리빙으로!’라는 테마로 <쿠라시키 재생공방>이라는 조합을 결성하고 마을의 버려지고 방치된 민가를 하나둘 재생하기 시작한다.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도시재생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의 유입과 보여주기 식에 급급한 관의 행태, 박제된 시간과 획일화된 접근, 부동산 가치에 매몰된 현상과 이로 인한 주민과 세입자의 이탈 등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쿠라시키 재생공방 또한 단순히 외관을 고치고 오래된 집을 보존하는 방식으로는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지속가능하고 도시재생이 힘들다고 보았다. 특히 대규모로 급하게 많은 것을 바꾸는 것은 자칫 문화적, 도시적 충돌을 야기해 오히려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이들은 주민을 설득함과 동시에 버려진 민가를 하나둘 천천히 바꾸어 나갔다.
1988년 시작된 쿠라시키 재생공방의 작업은 올해로 정확히 30년을 맞았다. 그리고 이들이 재생한 민가의 수는 어느 덧 수백 채를 넘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6명의 건축가는 단순히 외관을 고치는 차원을 넘어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재생을 위한 장기 임대방식 제안, 디자인 융합, 마을 데이터베이스 구축, 자급자족 음식점, 전통기술의 계승 등을 실현하며 건축과 건축가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역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만든 강한 유대감과 마을을 지탱하는 건축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후 들어오는 대규모 부동산과 기업들에게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쿠라시키의 전통과 철학을 계승하고 공생하는 방식으로 건강한 도시재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민간주도의 재생사례로 꼽히는 쿠라시키 미관지구와 쿠라시키 재생공방. 오늘날 여전히 많은 도시문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쿠라시키의 사례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모범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