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건축문화를 위한 건축이야기
주택공급난 해소를 목표로 시작된 이 2개의 건축유형은 그러나 자본논리 아래 획일화된 디자인과 주차, 채광문제 등 오늘날 우리네 거주환경과 도시풍경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이 이단아적인 건축은 그렇다면 어디서 · 어떻게 · 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한눈에 구분하기도 힘든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대한민국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격동기 속에서 태어난 다세대/다가구주택. 단순히 건축가의 책임으로만 떠넘기기엔 뭔가 수상한 이 둘의 시작을 되짚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도시풍경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일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건축법 시행령: 다가구주택>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3개 층 이하로서 지하 주차장을 제외한 1개 동의 연면적이 660제곱미터 이하이고, 19세대 이하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다만, 1층 바닥면적의 2분의1 이상을 필로티 구조로 하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을 주택 외의 용도로 쓰는 경우에는 해당 층을 주택의 층수에서 제외한다.
<건축법 시행령: 다세대주택>
주택으로 쓰는 1개 동의 바닥면적의 합계가 660㎡ 이하이고, 층수가 4개 층 이하인 주택
요약: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가구별 분양이 불가능하지만,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포함돼 호수별 분양이 가능하다.
88서울올림픽으로 나라 전체가 한껏 들뜬 1988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자긍심 위로 저금리, 저유가, 저원화로 대두되는 ‘3저(低)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 증시는 13대 대선을 전후하여 92.6%(1987)와 72.8%(1988)가 올랐고,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전월세난이 심화되었다.
당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값은 평균 2.6배(!!)가 올랐고, 유가하락으로 경기회복세로 돌아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전국 주택가격은 평균 67%가 올랐다고 하니 재태크 수단으로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점이 이해할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택가격의 상승원인으로 꼽혔던 것이 바로 주택공급량의 부족.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고 주택보급량을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건설정책은 1970년대에 들어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각종 문제들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어쩌면 체계적인 주택정책 없이 물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양이 아닌 질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겠다. 특히 1970년대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투기로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정부는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부동산대책을 내놓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부동산 대책인 ‘8.8부동산 종합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 1976년 26%였던 전국의 평균지가 변동률은 1977년 34%, 1978년에는 49%까지 올랐고, 특히 서울 지역 땅값은 1978년 한 해 135.7% 가 폭등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랐다 라는 시대.
물론 여느 정책이 그렇듯 부동산 대책도 수정과 조정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1980년 중반까지 대한민국 주택시장은 과열과 침체가 반복되는 양상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1982년 도입된 분양가 상한제는 1989년 원가연동제가 도입될 때까지 주택시장을 억눌렀고, 주택난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치뤄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행사를 맞아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고 3저와 맞물려 경기가 호전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에 1988년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세우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5대 신도시를 다 합하더라도 주택난을 해결하고 주택보급률을 급격히 끌어올리기는 어려웠던 것.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는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사실 1980년대에는 도심 주택난이 심화되면서 단독주택의 지하와 창고 등을 주거공간으로 개조하여 임대하거나 1층과 2층의 현관을 따로 내어 각각 임대하는 등의 방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단독주택'은 기존의 단독주택 개념을 뒤흔드는 것으로 새로운 주택형식의 정립이 필요하였고, 도심 속 자투리땅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주택난의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며 1984년 ‘다세대주택’으로 명문화되었다. 당시 건축기준은 연면적 330m² 이하, 층수 2층 이하, 2~9가구’로서 비로소 분양용 소규모 공동주택이 제도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다세대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인접대지 경계선과의 거리를 연립주택처럼 높이의 1/2을 띄우는 것에서 2m만 띄우도록 규제를 완화하자 전국적으로 다세대주택 신축붐이 일어나게 된다.
주택난의 해결책으로 급부상했던 다세대주택.
그러나...
주택구입 능력이 없는 저소득 가구들에게 여전히 집은 비쌌고, 다주택으로 인한 세금부담을 피하고 임대를 통한 소득증대를 원하는 건물주들은 여전히 지하와 창고, 옥상 등을 불법개조해 임대용으로 다세대주택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부는 저소득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 집주인이 1주택 자격을 유지하면서 임대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1990년 ‘다가구주택’을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제도화한다. 그리고 다세대/다가구주택의 공급확대를 위해 ‘연면적 330m²에서 660m²로, 가구 수를 2~9가구에서 2~19가구로, 층수는 2층 이하에서 3층 이하로’ 건축기준을 완화하되, 다가구주택의 경우 대지경계선에서 1m만 띄우게 더욱 완화함으로써 저소득 세입자를 위한 다가구주택 신축을 더욱 유도하였다. (1999년에는 다세대주택의 2m이격 마저 폐지되고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의 건축기준을 하나로 통합. 현재는 개별등기 여부로만 구분)
그리고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대 초에는 주택공급량이 크게 늘며 주택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전월세가 안정화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3년 다가구주택을 다세대주택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소득세법상 공동주택으로 간주하자 다가구주택 소유자들의 소송이 이어졌고, 마침 주택보급이 증가하고 전월세가 안정화되면서 다가구주택의 도입취지가 퇴색하자 정부는 다가구주택을 폐지하거나 300m² 이하로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도심 속 자투리 땅을 활용한 민간주택건설을 활성화하고, 주택보급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부족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급급했던 물량 중심의 경제논리로 보급된 만큼 도시와 건축 그리고 거주민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초래된 채광과 통풍, 주차, 쓰레기 문제 뿐만 아니라 도심의 몰개성화와 주민들의 소통공간의 부재 등은 오늘날 우리세대 건축가들이 새롭게 떠안은 과제일 것이다.
1세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등장한지 30년. 사이클이 한 번 돌아 노후화된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철거하고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가 증가하는 요즘, 여전히 30년 전 모습 그대로 ‘전통’을 지키는 건물들이 많은 가운데 의식있는 건축가와 건물주들이 제시하는 다세대/다가구의 새로운 대안들이 우리의 건축과 도시를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아니 어쩌면 다세대/다가구에서 건축가의 참여는 이제 막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글. 에이플래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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