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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12. 2017

여행지에서 칵테일에 빠지다

핌스(런던), 카리피링야(리오), 스프릿츠(밀라노), 다이키리(아바나)




여행을 하면 그 나라 술을 맛본다. 내겐 독일에 가면 저녁엔 펍에 들러 가볍게 맥주 한 잔쯤은 하는 게 여행의 낭만이다. 피곤하거나 밤이 무서운 도시에선 동네 샵에서 와인과 치즈를 사와 숙소에서 간단하게 마시고 자곤 했다. 여행을 하면서 즐기는 술이 다양해졌다. 칵테일의 매력에 빠졌다.

 

#영국 런던 - 펍에 즐기는 여름 칵테일 "핌스"

 2015년 7월. 이직 첫 날을 런던에서 맞이했다. 마침 글로벌 미팅 장소가 런던이었다. 전 직장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회사로 옮기다 보니 걱정이 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템즈강가를 걸어 출근해 새로운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업무가 끝나면 우르르 런던 펍으로 달려갔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이라 낯설고 어색하지만 다행히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는 늦은 오후가 되면 런더너들은 가든파티에서 칵테일을 즐긴다. 이때 필요한 여름 칵테일이 바로 핌스Pimm’s. 만드는 법은 간단한다. 시원한 얼음잔에 슬라이스 한 레몬, 오렌지, 딸기, 오이를 술 핌스 넘버원과 함께 섞으면 보기만 해도 상큼한 자두빛이 돈다. 이제 민트잎을 적당히 넣고 얼음을 가득 채운 후 레모네이드를 부으면 완성이다. 핌스넘버원과 레모네이드의 비율은 1:3 정도가 적당하다.

 

 펍의 야외 긴 데크에 앉으면 피쳐 사이즈의 핌스가 줄줄이 나오고 우린 환호성으로 더위를 달래줄 청량한 핌스를 마셨다. 핌스가 여러 차례 돌고 나면, 다른 펍으로 가서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런더너들의 바 호핑에 동참했다. 기분 좋은 미풍, 야외 데크와 나무 향기, 공기 중에 떠도는 웃음소리, 낯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신 핌스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축배였다. 핌스는 내게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청량한 칵테일이다.

 

#브라질 리오- 삼바리듬에 취하는 "카리피링야"

 브라질 리오의 광장에서 삼바 음악과 함께 한 카리피링야는 “한 잔 더! 한잔 더!”를 부르게 만드는 시작 하면 멈출 수 없는 매혹적인 칵테일이다. 매주 월요일 밤 Pedra do Sal에선 길거리 라이브 삼바 세션이 열린다. 페드라 도 살은 ‘리틀 아프리카’라 불린다.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아프리카 노예를 거래한 역사적인 장소다. 근처 항구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도망친 노예와 자유인이 된 노예들이 집단 거주했던 지역이다. 현재도 그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다.  


 페드라 도 살로 연결되는 골목길은 브라질 무술 카포에라와 삼바리듬을 만드는 거리 연주자들을 구경하는  리오 현지인 카리오카 carioca와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다. 다양한 과일을 섞은 카리피링야를 파는 좌판들이 줄지어 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모두 카리피링야 한 잔씩은 손에 들고 있다. 독한 술이지만 과일을 섞었더니 첫맛의 달달함, 골라먹는 재미, 흥분되게 만드는 삼바의 리듬, 페드라 도 솔의 바위 언덕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 정열적인 이국의 분위기가 카리피링야를 계속 부른다. 일행들과 광장 여기저기 흩어졌다 만나면 한 잔, 또 만나면 한 잔 하면서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어지러워 바위 언덕에 앉아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베테랑 연주자들의 삼바 연주를 즐긴다. 어깨를 툭 치는 손길에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 슬슬 자리를 파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래, 여긴 리오지. 안전이 최고니까.” 더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걸어 골목길을 빠져간다. 카리피링야는 남미의 정열의 밤, 삼바의 리듬이 기억나는 칵테일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초저녁은 식전주 타임 "스프릿츠"

 이탈리아 북부에선 늦은 오후에 가벼운 안주와 식전 주로 칵테일을 마시는 아페리티보 Aperitivo를 즐겼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늦은 저녁을 하는 데, 여행자들에게 착한 가격에 다양하고 가벼운 먹거리에 칵테일 스프릿츠를 한잔 하는 시간은 지친 몸을 다독여주는 행복한 시간이다. 스프릿츠는 원래 화이트 와인에 탄산수를 섞어 마셨던 술이지만 지금은 아페롤Aperol에 탄산수 등을 섞어 만든 오렌지 빛깔의 칵테일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페리티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이다.


이탈리아 거리를 걷다 보면 레스토랑 앞에 ‘Aperitivo’, ‘Spiritz’ 안내판을 널려있다. 이탈리아 여행길에선 호스트 추천으로 아페리티보가 괜찮은 동네 카페를 찾았다. 밀라노의 작은 유기농 음식 전문 와인카페에서는 5유로에 식전주 한잔과 안주가 뷔페로 제공되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라 책도 읽으면서 천천히 즐기고 있는데, 30분도 안되어서 바 테이블에 안주가 모두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아페리티보는 이른 저녁 몇 시간만 운영되는 거였다. 이런, 아페리티보는 꼭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피렌체의 아르노강가의 펍 테라스 자리에 앉아 즐긴 아페리티보는 스프릿츠와 함께 했다. 따뜻하게 구워낸 빵에 간단한 채소요리를 올린 정도였지만, 야외에 앉아 다리 위로 해가 뉘엿뉘엿지는 풍광을 바라보며 마시는 스프릿츠는 너무나 아름다운 맛이었다. 스프릿츠는 열심히 하루를 보낸 나를 칭찬해주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칵테일이다.


#쿠바 아바나- 헤밍웨이와 건배 "다이키리"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가 반평생을 보낸 곳 쿠바. 쿠바 여행은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여행이다. 이른 아침 길거리에서 ‘빠~앙'하고 클랙션이 울렸다. 오늘 하루 우리를 태울 하얀색 올드 클래식카가 도착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과 울통불퉁한 길을 엉덩이에 그대로 느끼면서 아바나 외곽 산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에 위치한 헤밍웨이의 대저택 핑카 비히아 Finca Vigia로 향했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그의 서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흔적은 침실, 거실, 서재, 수영장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저택 출입문에 걸린 종의 줄을 힘차게 당겨서, 지구 반대편에서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내가 여기 왔노라고 나름의 인사를 한 후, 우린 마당 한편에 앉아 더위를 식힐 스페셜 쿠바 리브레를 한 잔 하면서, 미니 라이브 연주를 즐겼다.


 이제부턴 술을 좋아했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아바나 구시가지에 위치한 그의 단골바 ‘라 보데기타'와 ‘엘 플로리디타‘’에 간다. 라 보데기타에 가면 헤밍웨이가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쓴 낙서가 액자에 걸려 있다. 처음 마셔 본 다이키리는 화이트럼과 라임주스를 1:1로 섞고, 설탕을 한 스푼 넣고, 간 얼음을 넣어 칵데일 잔에 올리면 된다. 당뇨가 있던 헤밍웨이는 설탕은 빼고 라임만 넣은 다이키리인 ‘다이키리 파파 헤밍웨이'를 즐겼다.


 고급스러운 엘 플로리디타 입구에는 큐반 뮤직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밴드가 연신 관광객들을 위한 흥겨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입구 왼쪽 바테이블에 한 팔을 걸치고 서 있는 헤밍웨이 동상이 지긋한 눈빛을 보내며 함께 ‘다이키리’를 마시자고 포즈를 잡고 있다. 헤밍웨이는 바로 이 자리에서 다이키리를 스트레이트로 13잔을 마셨다. 강렬한 빨강과 아이보리색이 우아한 바에서는 관광객들의 밀려드는 다이키리 주문에 정복을 입은 바텐더들이 쉴새없이 칵테일을 만드는 믹서 소음, 라이브연주, 손님들의 대화와 뒤섞여 정신이 없다. 그래도 럼 베이스의 쿠바 칵테일 다이키리 맛은 기가 막히다. 다이키리는 쿠바에서 여생을 보낸 헤밍웨이와의 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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