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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Sep 21. 2017

여행은 해프닝: 출국 공항에서 캐리어 분실

홍콩 부부의 호의로 가득 찬 캐리어를 들고 귀국하다

 인천공항 출국 심사대.

 짐 검사 대기줄에 서 핸드폰을 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

 

‘어? 내 캐리어가 어디 있지?’.


 정신이 번쩍 들면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봐도 캐리어가 없다. 간단한 출장이라 기내용 작은 가방을 가져왔다. 탑승 수속이 끝날 때 캐리어를 끌던 기억은 난다. 다음은 로밍 서비스. 대기표를 받고 상담을 했다. 그 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항직원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나와 항공사 카운터부터 로밍 서비스 데스크까지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회색 캐리어가 없는지 찾았다. 직원에게 물어봐도 보지 못했단다. 비행기 이륙까지 이제 30분 남았다. 분실물센터에 문의해도 접수건이 없다.


 항공사 실수로 짐을 며칠 만에 찾은 적은 있어도, 내 부주의로 출국장에서 가방을 잃다니.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남 탓도 할 수 없고, 없어진 짐이 갑자기 턱 나타날 리도 없고.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결정을 해야 했다.


 ‘그래, 한 번쯤 생각 본 적 있잖아. 캐리어 없이 지갑과 여권만 달랑 들고 떠나는 가벼운 여행. 해보자!’


 쿨한 척 마음을 먹으니, 뻘뻘 땀을 흘리며 당황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오히려 도움을 준 출국 심사대 직원들이 괜찮겠냐며 걱정한다. 어깨에 멘 에코백, 노트북, 핸드폰, 여권, 신용카드가 든 지갑. 충분하다. 귀국하면 분실물센터에서 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히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드디어 홍콩. 무거운 캐리어가 없으니 택시 탈 이유도 없다. 홍콩 사람인 양 가방 하나 메고 전철을 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동네 일본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에 부드러운 치킨버거를 먹는 여유도 부린다. 단골손님인양 1미터가 넘는 연어 회 뜨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으며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오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숙소에서 대충 샤워를 하고 오늘 저녁 행사장으로 향한다. 작년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최종 후보에 올라 운이 좋으면 국제적인 상을 받고 무대에 설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복장은 티셔츠, 청바지, 샌들. 그야말로 편안한 공항패션이다. 행사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자라에 들러 심플한 검정 드레스, 하이힐을 사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결국 상반신 사진 촬영만 성공하자는 마음으로 드레스 분위기 상의만 샀다. 시상식장에 도착했는데 메이크업이 아쉽다. 칵테일 리셉션에서 만난 참석자들과 폭풍 수다로 친해진 뒤 화장품을 빌려 화장실에서 메이크업도 해결했다.


 그래도 상운이 있어 캐리어를 잃고도 홍콩에 온 보람이 있다. 당당히 ‘아시아 최고의 출판물’ 수상의 영광을 얻고,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그제야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계속 머리가 아파서 음식을 못 먹었는데, 낮에 덜 익은 치킨을 먹어 탈이 났다. 참으로 버라이어티 한 하루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친해진 주디 Judy와 준 Jun 커플이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대만인 주디는 중국계 이민자로 독일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준과 상하이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당장 우리 집으로 가요.’


 마음씨 따뜻한 커플은 오늘 하루 다사다난했던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집으로 초대했다. 3일 정도 홍콩에 머물며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준단다. 집은 행사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다. 친구들이 두고 간 캐리어가 여러 개 있고, 홍콩 집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못 이기는 척 주디 네로 갔다. 주디의 홍콩 요가 친구가 전 직장 동료란 사실을 알고 메신저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다. 친구의 친구라는 사실에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았다. 아파트로 걸어가는 동안 주디는 준과의 첫 만남부터 연상연하 커플의 연애 스토리를 들려줬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과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근황 토크를 하듯,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주디의 집은 전형적인 홍콩 고층 아파트다. 문을 열자 나이 많은 개가 굼뜬 몸을 일으켜 반긴다. 듬성듬성 빠진 털에 노안으로 앞을 잘 보지 못해 아파트 가구에 쿵쿵 머리가 닿는다. 어릴 적부터 키우는 반려견이다. 주디는 반려견을 위해 가구 위치를 안 바꾼다. 옷방에 캐리어가 여러 개 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을 고르라는 말에 손잡이가 살짝 고장 난 가방을 택했다. 주디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옷장에서 갑자기 옷을 꺼낸다. 잠옷 대용 옷부터 칫솔치약, 화장품 샘플까지 아낌없이 준다.

 

“당장 오늘 밤 입고 잘 잠옷부터 필요하겠지?”

“주디, 너무 부담스러워. 이럴 필요까지 없어. 괜찮아" 

“친구 간에 무슨 소리야"


 주디 덕분에 홍콩에서 부족함이 없이 지냈다. 가벼운 가방 하나 메고 갔다가 호의로 가득 찬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P.S-인천공항 분실물 센터에 전화했지만 끝내 캐리어는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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