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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Nov 01. 2016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애 아빠 is 누군들

응답하라 시리즈의 화제성의 핵심은 남편 찾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응답하라 내 남편은 아닐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역시 애 아빠나 찾자는 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짓 존스의 이전 시리즈를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로맨틱 코미디 시리즈의 해필리 에버 애프터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보게 된 영화가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였다.


지난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지만, 콜린 퍼스의 인터뷰처럼 "나는 마크 다아시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마크 다아시를 사랑해, 15년째"라고 말하는 것은 그 깊이와 울림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조금 아쉬운 느낌은 있다.



한편 로맨틱, 그리고 코미디라는 장르는 이야기를 확실히 다소 작위적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 40대 노처녀'에게 '스펙 짱짱한 미남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그 작위성의 핵심으로 지적한다면, 그 점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브리짓의 모습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남자 주인공들이 짱짱하고 멋진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종종 '평범한 여자의 반대말'을 물었을 때 '예쁜 여자'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의 요건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여자를 무엇으로만 보고 생각하는지가 훤히 드러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브리짓이 얼마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가를 찬탄하며 외모를 소비하는 대신(물론 다이어트에는 성공했다) 브리짓이 얼마나 능력 있는 직장인이며, 동료들이 얼마나 믿고 따르는 사람인지를 이야기하거나, 흔한 고민을 떠안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고민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 분투하는 모습을 사랑스러움이나 엉뚱함과 같은 매력을 곁들여 그려낸다. 혹자는 예쁘다는 칭찬이 여자에게 최고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이러한 태도가 브리짓에게는 예쁘다 외에도 더욱 많고 다양한 칭찬이 쏟아지고, 또 어울리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마크 다아시와 잭 퀀트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판타지에서 나온 왕자님으로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단순히 이들이 잘 생기고, 돈이 많으며,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런 이유라면 이 영화는 밋밋하고 우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서사가 판타지스럽다고 느껴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콜린 퍼스의 슈트핏도 아니고 패트릭 뎀시의 다정함도 아닌 브리짓 존스와 베이비를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핵심 서사는 임신과 출산이다. 임신으로 인연이 시작되고 출산으로서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리고 두 명의 이상적인 남자들은 그 과정을 함께하며 힘껏 돕는다.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몸을 함부로 굴린 주제에'로 시작하는 폭언을 쏟거나, 내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며 발뺌하거나, 책임 질 형편이 안되니 알아서 하라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


비록 영화는 외화이지만, 우리가 자라면서 보고 겪어온 육아 환경을 떠올려 보아도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이러한 남자들의 모습이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점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결혼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서사는 현실에서는 사실 점차 변방으로 밀려난 서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리짓과 잭 퀀트와 마크 다아시가 함께하는 임신과 출산 서사에서는 서로가 무거운 짐을 기꺼이 나눠지려고 했고(심지어 내 아이가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 덕분에 브리짓은 그 서사를 두려움 없이 겪어낼 수 있었고, 커리어도 지켜낼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임신과 출산을 '나의 일'이라고 깊게 받아들이는 그 두 남자 주인공이 이 로맨틱 판타지의 정점이 아니었을까. 태어나는 아이들이 적어진다는 '소자화'라는 용어를 쓰는 중국과 일본과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쓰는 우리나라만을 비교해 보아도, 그 두려움과 책임이 얼마만큼 나누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서사가 현실의 브리짓들에게서는 멀어지고 있는지 조금은 엿보인다.


그러니까 애 아빠가 누군들, 그것이 무엇이 중하냐는 말이다. 브리짓은 두려움과 마음의 짐 없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무한한 응원과 지원 속에서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사실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친부와 결혼 상대가 반드시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브리짓 존스와 베이비는 이렇게 매력적인 브리짓과 스토리라인이 있는 즐거운 영화였다.


마크 러팔로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정말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우리에겐 초인적인 여성들이 더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아요. 남성들은 뭐든 다 할 수 있고,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약하든 강하든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아요. 하지만 여성 캐릭터에게 그런 걸 시키면 우리는 하나하나를 엄청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죠. 여성들을 위한 스토리라인이 워낙 없다 보니, 비교할 대상이 마땅히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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