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 놨던 쥬라기월드를 보고 나니 시간이 늦어서 커피 대신 종이컵에 립스틱을 묻혀 가며 캐모마일 티 한 잔을 마시고 크레이프를 한 장 한 장 벗겨 먹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다.
이십 대 초반, 어쩌면 중반까지도 예민한 한량이 추앙받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사회로 나가기를 더 이상 떠밀릴 수 없을 지경까지 떠밀리고 나니 그런 것은 자책인 척 남 탓 핑계만 대는 소리만 주야장천 하는 것 같아 영 인간으로서 매력이 없고 그 꼴이 보기 거북한 시기에 이르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 책은 보기 거북함을 넘어서 ‘이 자식은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데,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다.
“나는 거기서 자칫 존경받을 처지가 된 것입니다. 존경받는다는 관념 또한 나를 몹시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을 속이고, 어느 전지전능한 자가 그 사기 짓을 간파하는 통에 그만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나서 죽는 것보다 더한 창피를 당한다, 그것이 ‘존경받는다’는 것에 대해 내가 내린 정의였습니다.”
남의 존경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의 대목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책에서 단 한 대목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평 가운데 ‘다자이 오사무란 인간은 정말 싫지만 그의 소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있는데, 크게 공감한다. 이런 류의 인간은 정말 싫다. 나아질 기미도 없는 자기 비하에 그 자기 비하의 주체이자 대상인 자기 자신에 어지간히도 도취되어서 더욱 고난에 빠지기를 즐기는 엄살쟁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매혹이라 부르는, 다섯 번의 (동반)자살 시도와 그 다섯 번째에 성공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대변(代辯)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 이런 사람을 내게 감당하라 하면 진저리를 치고 도망가거나 이미 같이 동반 자살을 시도 했다가 나만 죽고 다자이 오사무만 살아 남았거나 했을 것 같아 싫지만서도.
그러니까 한 마디로 으어 인생 좆같네도 이 정도로 우아하고 처절하게 쓸 수 있으면 그래 인정...뭐 이런 느낌인 것 같다. 그러나 책 뒤에 실린 평을 인용하자면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읽힐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