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돕는 기록 vs 기억을 빼앗는 기록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고들 한다. 일반적으로 기록은 기억을 도와주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때로 기록은 기억을 방해한다. 기록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기록이 항상 모든 기억을 돕기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기억을 돕는 기록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오늘은 기억과 기록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로 한다.
내가 해야 할 일들과 계획 등을 까먹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건 대표적으로 기억을 돕는 기록이자 훌륭한 습관이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건망증도 흔하디 흔하니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기억력만 믿지 말고 기록을 해두는 게 좋다. 무엇보다, 이렇게 기록해 둔 내용들은 쓰고 나서 당분간 잊어도 되기 때문에 두뇌를 보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OOO 기획안 OO일까지 팀과 공유하기" 같은 건 마감일까지 굳이 되뇌지 않고 To do list에 적은 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게 일의 집중력을 훨씬 높여준다.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겨두는 것 또한 기억을 돕는 기록 중 하나일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나 어떤 순간에 느낀 감정과 느낌들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 대상을 파고들어 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순간의 감정을 구체화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자칫 스쳐 지나가 잊힐 수 있었던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더 오랫동안 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기'이다. 아마도 일기를 쓰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 사람들보다 매일을 보다 선명하고 충만하게 기억하지 않을까?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한 나는 일기를 쓰진 않지만, 가끔씩 이렇게 브런치에 기록함으로써 내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새겨 놓는다. 기록해 놓은 글들은 모두 내 머릿속에 한 자리씩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기록의 대상 자체를 기억할 수 있게 하는데서 나아가 중요한 행위를 이끌어 내고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기록은 훌륭한 기록이다.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록함으로써 행동하게 하고, 더 깊고 다양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며, 결과적으로 더 큰 가치를 생산하는 기록이야말로 '기억을 돕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기록 중독자이자 맹신자에 가깝다. 나의 다른 글 <생각, 말, 글>에서 적기도 했지만, 학창 시절에는 늘 메모지와 다이어리를 끼고 살았고, 스마트폰 세상이 열리면서 기록의 매체와 내용만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많은 걸 기록하는 편이다. 일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오늘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 중간중간 떠오르는 아이디어 같은 것들도 모두 기록해 둔다. 상당히 기록 의존적인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 기록하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기록함과 동시에 기억에서 지우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들은 캘린더에 기록하고, 까먹지 말아야 할 일은 포스트잇에 적어두고, 친구와 지인들의 연락처는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그 외에도 '기억해야 할' 다양한 내용들을 어딘가에 적어둠으로써 나는 더 이상 그걸 머릿속에 새겨 넣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앞서 말했듯이 두뇌의 효율적 활용에도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결코 나쁘지 않다. 우리의 기억을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들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굳이 모든 걸 머릿속에 꾹꾹 담을 필요도 없거니와 그럴 공간이 있다면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기억하는데 머리를 쓰는 게 현명하다.
다만, 나의 이런 '무조건적이고 습관적인' 기록 행위가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더 온전하고 풍부하게 기억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빼앗는 상황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런 문구를 만났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의 기억행위는 일찍이 보았거나 들었던 것을 소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외된 기억이 된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록해 놓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소외된 기억행위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종이 위에 옮겨 놓음으로써 나는 그 정보를 소유하기에 이르며 - 그것을 머릿속에 새겨놓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읽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었다. 기록은 늘 기억을 돕는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반직관적인 말이지 않은가. '소유와 존재'의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나 글로 기록함으로써, 즉 '기억을 소유함으로써' 나의 존재 밖에 기억을 두게 된다.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내 안에 그 자체로 살아있는 게 아니라 기록을 통해 소유하게 된다는 이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SNS를 떠올리게 됐다.
현대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자신의 일상과 추억을 기록한다.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즐거운 한때, 여행의 추억 등 기억하고 싶은 일이나 자랑하고 싶은 일들이 주로 여기에 기록된다. 나 또한 SNS는 득 보다 실이 많고 사회적 병폐를 양산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때때로 일기 대신 쓰는 거라며 인스타그램에 여행 기록을 올리는 표리부동한 사람이긴 하다. 그럼에도 에리히 프롬의 책을 보면서 SNS를 떠올린 건, 그 기록이 '소유하기 위한 기록'에 불과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기록함으로써 소유하지 않은 순간'들은 오히려 기억에서 점점 흐려짐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삶을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희로애락의 순간들과 다양한 감정, 생각들은 내 안에 스스로 살아있지 않고 SNS의 기록으로만 숨을 쉰다. 여행의 추억들은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과 글을 중심으로 각색되어 있고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은 점점 내 안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조금 더 오감으로 느끼고 꼭꼭 곱씹어볼 수 있었던 상황들은 한번 인스타에 올려버린 후에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기록'했으니까 더 이상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차라리 이는 '기억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이건 마치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 내일의 시험을 위해 오늘 시험 본 과목들은 모조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노력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미 쓰임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기억은 찬밥신세가 된다. 스마트폰이 사람을 더 멍청하게 만든다는 말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사람이 주체적으로 해왔던 일들을 스마트폰이 대신해주기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해결 가능한 일들에 우리는 더 이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 60-70대인 부모님이나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을 보면 과거의 사건이나 경험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 경우가 많다. 몇 십 년 전 특정 장소의 거리 모양, 예전에 친구와 만나서 나눈 대화와 표정 하나하나까지 신기할 정도로 잘 기억하신다. 물론 개인별 기억력의 차이나 사회적, 환경적 차이로 인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수십 년 전에 비해 주의를 분산시킬 자극적인 요소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 하지만 같은 조건과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아날로그 세대의 기억력이 디지털 세대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란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기록할 수 있는 보조수단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늘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폰도, 부팅만 하면 바로 작업할 수 있는 컴퓨터도 없던 시대에는 오로지 내 머릿속에 새겨두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지도 세대가 내비게이션 세대보다 훨씬 더 길을 잘 알고 잘 찾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영츠하이머'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young'과 '알츠하이머'의 합성어로 건망증이 심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이 그 중 하나이기에 '디지털 치매'라고도 불린다. 기억이 필요한 모든 일을 스마트폰에 의지하면서 우리 뇌가 스스로 기억하는 힘 또한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 일일이 기억하고 SNS도 하지 말자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진보한 만큼 우리는 그 이점을 지혜롭게 누리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로 '더 잘 기억하기 위한 기록'과 '기억을 빼앗는 기록'을 현명하게 구분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을 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이를 구분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저 기록과 기억은 상호보완관계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내려 놓고, 때로는 기록하기보다 기억하게 둘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면, 때때로 단편적인 기록을 멈추고 오감을 열고 그 순간을 흠뻑 만끽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나의 느낌과 감정을 떠올려보며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보는 것이다. 기록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농익은 후에 하는 기록은 아마도 훨씬 더 깊은 맛을 내며 내 안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