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잡글부터 다시
일기를 쓰다 좋은 글감을 발견하면 브런치에다 끄적이고, 다듬기를 실패하면 삭제하고를 반복하던 2019년 어느 날 나는 이 모든 것을 멈추었다. 일기와 메모 전반에 걸쳐 온통 현실을 푸념하는 이야기로 빼곡해지니 발행할 만한 글이 나올 리 만무했다. 그렇게 다시 아이폰 메모 앱 속으로 숨어버렸다.
얼마 전 회사에서 가볍게 인터뷰를 당했다. (막 거창한 인터뷰는 아니고..) 회사 소셜 계정에 팀원 소개를 연재하는데, 나를 소개하고 싶다는 거였다. 취미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책 읽기'라 답했고, 좋아하는 작가로 '최은영'을 꼽았다. 이어서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가장 처음 작가님과 만난 단편집 '쇼코의 미소'를 소개하기로 한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이 기억나질 않아 출근길에 부랴부랴 다시 책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 어딘가에 감상을 남겼던 기억이 나 브런치를 열어보았다. 과연 4년 전 쓴 글이 있었다.
브런치에 남겼던 다른 글들도 한번 쭉 읽어보았다. 당장 삭제해버리고 싶은 투박한 글 투성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나를 소개하고 또 정의하는 데에 열중했던 글들을 보니 쉽게 삭제할 수 없었다. 보이기 위해 더 고심하고, 더 다듬고, 더 노력했던 시간이 묻어있었다.
사람을 소중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은 마음속 아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아파보았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들의 눈엔 아픈 사람이 보인다. (중략) 그렇게 견디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힘이었다.
- 4년 전 내가 쓴 브런치 글 중에서
4년 전에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도 나는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재밌게 일할 수 있을까, 모두가 행복한 방법은 없을까 따위의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믿으면서.
삶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듯, 내 이야기를 통해 작은 힌트를 얻어갔으면 하는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통해 신선한 시선을 느끼고 간다면, 그보다 기쁠 순 없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을까.
브랜드 기획자 김도영 님의 <기획자의 독서>에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려면 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왜 좋아하는지'를 아는 것, '좋아하는 이유에 선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일'은 '비로소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것'일 지도 모르며,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 싫어하는 것은 왜 싫은지 이런 이유 찾기의 과정'을 멈추지 말자고.
내일 뭘 쓸지 고민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투박한 글들에 또 서툰 글을 보태겠지만, 이러다 보면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이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보 같다 하지 않고 더 분명하게, 선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겠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 사람을 바라보는 일 또한 더 잘할 수 있게 되겠지. 괜히 신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