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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May 16. 2024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문장


내가 박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정한 단어로 구성된 간결한 문장을 쓰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도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 박준 작가의 글은 저장하고 싶은 문장이 많다. 오늘은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소개해 보겠다. 



어떤 일을 바라거나 무엇을 빌지 않아도
더없이 좋았던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들이 다 지나자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지금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 '함께'. 너와 나였다가 우리가 되는 말. 나는 이 단어가 참 좋다. 하지만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을 때에는 공허한 자리만 남는다. 그 자리는 매번 예상보다 크다. 가끔은 상처까지 함께 남는다. 그럴 때마다 다시는 함께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함께 할 사람을 찾고, 매번 우리가 되길 반복한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중략)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살아간 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삶의 모양을 관찰하기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 관찰하다 보면 어김없이 내가 밟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제 그만 나를 봐줘야 할 때를 알게 된다. 관찰의 시선을 나에게 옮겨본다. 잠시 멈추고 다독거릴 시간을 만든다. 치우친 곳은 없는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살핀다. 삶의 속도는 느려지더라도 잊지 않고 나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고독을 털어내러 간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나는 사람이 좋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좋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다가가고,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이런 순수한 호기심을 내보이면 기꺼이 자신을 공유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는 계산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두려움에 망설이다 놓친 후회가 더 오래도록 남기에,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 맞이한다. 일부러 시작할 수 없고, 그치고 싶을 때 멈추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의 선택과 순간에 집중한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늦은 밤 떠올리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나를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앓은 밤들이 있었다. 신발장에 주저앉아 밤을 꼬박 보낸 적도 있었다. 생각은 분명 머리로 하는데,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것처럼 한 걸음조차 힘들 때가 있었다. 어서 흐르길 바라는 날들은 왜 이리 느리게 지나가는지. 떠나보내고 나니 알겠다. 그 모든 시간이 준비였음을. 섣불리 보내지 않고, 오래도록 매만지며 소화해 내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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