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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Oct 01. 2020

아기, 정답을 알려줘

낳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 탓이랄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예쁘고 잘생기고 귀엽게 생긴' 아이들의 외모만을 좋아할 뿐이지, 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와 아무 연관 없는 아이들이 이뻐 보이지는 않는다. 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는, 궁금증이라는 의지에 무한한 활동력이 연료가 되어 로켓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아이들이, 오히려 내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심지어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방송도 보지 못하겠으니 말 다했다.


사실 비슷한 이유로, 상하 관계가 극도로 뚜렷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일을 할 수 없는 조직도 좋아하지 않고, 내 스케줄대로 공부할 수 없게 나를 닦달하거나 강제로 앉혀놓을 것 같은 학원들도 싫어했다. 다행히도 논술 학원과 예체능 빼고는 학원에 다녀본 적 없이 직급 없는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월급 받으며 잘 살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내 피에는 자유랄까, 보헤미안의 무엇인가랄까, 여하튼 그런 것이 흐르고 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년에 결혼을 했고, 30대를 앞두고 있다. 아기를 낳을지 안 낳을지, 낳는다면 언제 낳을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나 혼자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지 안 낳을 것인지를 누군가가 질문한다면, 그 누군가가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뻥긋 열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나는 외쳤을 것이다.

"안 낳을 겁니다!"

그만큼 나는 막연히 내가 딩크족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때 자기소개에 적는 장래희망급의 막연한 꿈이다. 결혼하고 나니, 아기를 낳을 것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나의 부모님과 남편의 부모님(그리고 남편 본인), 나만 보면 아기는 어릴 때 낳을수록 좋다는 이미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회사 선배들,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계획 중인 친구들 등 온 세상이 나에게 아기를 낳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싶다. 피임을 오래 하다 난임이 됐다든가, 노산을 하면 부모도 아이도 힘들다든가 하는 괴담들이 툭하면 나를 겁준다. 이제는 하도 듣다 보니 세뇌가 되어서 그런지,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생각과 낳기 싫다는 생각이 하루에 수십 번쯤 뒤집힌다. 차라리 정답이 있었으면 싶지만, 그럴 리는 없고, 내가 왜 아기를 낳기 싫은지 혹은 아기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지를 정리라도 좀 해둬야겠다 싶었다.




1. 낳고 싶지 않은 이유

- 금전적인 이유

성인이 되고 가장 좋았던 점 중에 하나가 내돈내산(?)이었다. 학생 때부터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취업도 생각보다 빨리 하는 바람에, 내가 쓸 돈을 내가 버는 재미를 너무 오래 맛본 탓일까. 강제로 쉬게 될 육아 휴직 기간과 혹시나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어쩌지라는 상상이 그저 망상이 아닌 공포로 다가온다. 나의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공포, 내 힘으로 모으는 돈이 하나도 없고 남의 돈만 축내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공포, 사회에서 내 자리를 잃게 될 것 같은 공포.


또한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아이에게 쏟게 될 양육비와 등록금과 결혼 자금 등이 벌써부터 부담스럽다. 노후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의 뒷바라지할 돈은 다 모아야 하고, 뒷바라지에 얼마가 어떻게 들 지는 계획조차 할 수 없다. 의사라도 되고싶다 하면 의대 등록금에 치이고, 악기라도 잘하면 악기값만 수천이 깨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부만 적당히 잘하는 아이를 키우는 게 돈이 제일 덜 든다고 하니, 참 웃픈 현실이다. 만약 아이가 없다면, 집 한 채만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노후 준비는 거의 끝일 텐데, 게다가 사업이든 투자든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 볼 수 있을 텐데(망해도 둘은 라면만 먹고살아도 되지만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봐서라도 망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시도조차 못할 것 같다). 아이를 갖게되면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은 높아지고 소비가 많아질 가능성은 백퍼센트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 신체적인 이유

출산과 육아는 공동이라지만, 어쨌든 여자의 몸에서 아이가 생기고 지내고 나온다. 내 몸이 새로운 생명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출산 후의 내 몸은 어떤 변화를 겪을지가 두렵다. 출산 후에 체형 교정이 됐다는 사람도 있고 체질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동일한 확률로 어딘가가 안 좋아질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태어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만큼 사랑의 감정이 샘솟는다 하더라도, 아직 그 감정을 못 느껴서일지. 내 의지와 다르게 변할 내 모습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 잃어버릴 ‘나의 시간들’ 그리고 ‘나’

강아지조차 키우지 않았던 작년과 강아지 뭉치를 데려온 이후인 올해의 삶만 해도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부부 각자의 생활의 자유도도 엄청난 수준으로 떨어졌고, 부부의 데이트와 여행도 항상 애견 동반이 가능한 곳으로만 가게 된다. 물론 이런 삶도 행복하고 좋다. 그렇지만 때때로 오롯이 혼자 혹은 둘만 있었던 시간도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에게, 그리고 남편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강아지만으로도 이렇게나 줄어버리다니. 하물며 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나라는 존재, 나의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더 이상의 자유로운 여행도, 부부만이 갔던 치맥 데이트도, 무작정 떠났던 드라이브도, 함께 즐기던 우리만의 컴퓨터 게임 시간도, 나만이 즐기는 취미 생활도, 모두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여유로운 시간도, 유튜버가 되겠다며 영상을 찍고 편집하며 키득거리는 시간도, 맥주 한 잔 하며 영화를 보다가 내키는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하루도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자유가 돌아오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가진 체력도 창의력도 의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나’를 잃을까 두렵다.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던 경제 활동, 사회 활동, 취미 활동, 모든 것들이 당분간 제한되고 차단될 텐데, 그 속에서 나는 과연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진짜 나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저히 장담할 수가 없다. 산후우울증이 벌써부터 오는 기분이다.




2. 낳고 싶은 이유

- 느껴보지 못한 감정

흔히들 그러더라. 아이를 위해라면 내가 대신 죽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살면서 슬픔의 감정 외에는 삶의 기반까지 흔들릴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랑도 감동도 물론 자주 깊게 느껴봤지만, 이 정도면 나의 삶이 없어져도 되겠다는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삶이기에 감사하고, 행복한 기분을 더 연장하고 반복하기 위해 잘 살고 싶다는 의지만 더 높아질 뿐이었다. 그런데 내 삶을 포기해도 될 정도로 누군가를 소중히 하고 지켜내고 싶은, 엄청난 감정을 느껴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출산이라고 한다. 새롭고 미지인 세계를 좇는 것은 내 또 하나의 본성이다. 왠지 그 경험을 놓쳐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래의 나에게 혼날까 봐

딩크였던 분들이 뒤늦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늦게 출산하시는 경우도 꽤 잦다. 그런 분들이 항상 나에게 이야기한다. 제발 빨리 낳으라고. 늦은 출산은 출산의 과정도 힘들지만, 미친 듯이 뛰노는 아이들의 체력을 감당해낼 수 없는 육아 지옥을 안겨준다고 한다. 이런 후일담들을 듣다 보니, 미래의 나조차도 나를 닦달하는 것 같다. 젊을 때 빨리 낳아라!


- 궁금증

어쩜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를 똑 닮았을까. 나조차도. 사실 다른 가족들에게서 아이들이 부모 붕어빵인 경우는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정작 내가 부모님과 닮았다고 생각을 해 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오히려 크고 보니 성격도 취향도 외모도 습관도, 모든 것들이 엄마 아빠의 기묘하고 신비한 조합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사이에 생길 아이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눈코입은 누굴 닮았을지, 어떻게 웃을지, 음악을 좋아할지 차를 좋아할지, 나처럼 소설이나 에세이를 좋아할지 남편처럼 자기 계발서를 좋아할지, 공부에는 조예가 좀 있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하다.

낳아보지 않으면 절대   없는 유전자 조합의 결과물이 미치도록 알고 싶다.

사실 다른 이유들보다도 이 궁금증이 나를 가장 출산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그래선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안 낳으면 안 낳았지 낳을 거면 둘 이상을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랄까.



코로나로 인해 자유를 강제로 제한당하다 보니, 어차피 이렇게 못 돌아다닐 거 그냥 아이를 확 가져버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졌다. 이유들을 적어보면 뭐라도 정리될 줄 알았는데, 생각만 더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을 내기에는 괜한 시기상조였나. 다시 읽어봐도 모든 이유들이 다 그럴듯해서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둘다 내손인 것은 함정?..)


결국 이렇게 이 고민은 해를 넘기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결론이 어떻게 됐든,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그때까지 최대한 열심히 행복하고 즐겁고 자유로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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