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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r 29. 2020

빼앗긴 일상에의 그리움

역시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다음 주면 끝나겠지 했던 기대가 다음 달이면 끝나겠지로 이어지고, 이제는 그저 올해 안에만 이라도 이 사태가 종결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코로나 19라는 이름이 그 파급력에 비해 지나치게 짧고 심플하게 느껴질 만큼, 누군가의 일상과 누군가의 생계를 처참하게 빼앗고 있는 이 바이러스가 너무도 밉다. 지긋지긋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만 되지 않으면 모두에게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믿었다. 바이러스의 병리학적인 단면만을 봤다. 비말 감염이니까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대화할 일을 줄이면 되지. 안 그래도 마스크도 잘 쓰고 다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니, 조심만 하면 딱히 무서울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감염시킨 것은 확진자들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공포와 의심으로 '감염'시켰고, 당연했던 우리의 일상 시간표를 가뿐히 '감염'시켰다. 출퇴근, 등하교, 불금과 같이 절대 깨질 수 없을 것 같던 시계와 요일의 룰들 역시 너무 쉽게 '감염'됐다. 


무엇이 우리의 전부를, 이토록이나 감염시켰을까.


이번 사태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것들이 빼앗겼고 어떤 것들이 무서운지, 그리고 어떤 것들이 그리운지. 그러면서 깨달았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선물한 진짜 공포는 '확진자가 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확진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전달자가 될 수도 있는 나'와 가까웠다.



매일 아침이면 각종 톡방과 게시판에서는 확진자가 전날 대비 몇 명이 늘어났는지를 얘기한다. 각 나라들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수, 늘어난 확진자 수 등등 매일매일 커져가는 숫자들을 보면서 당연히 불안감도 커져간다. 점점 자주 날아오는 재난 문자에 대부분은 알람은 끄거나 무시하기 십상이다. 처음엔 전국구 단위로만 번호가 붙던 확진자들에게 이제는 지역구 내에서도 고유한 번호가 붙는다. 


번호와 숫자에는 일상이 없다. 삶이 없다. 번호가 붙여진 채로 지난날들의 동선이 만천하에 공개된 확진자들에게 '인간성'은 부여되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조치이고 당연한 처사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나는 대한민국 10000번째 환자이자 A시의 100번째 환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 않고, 어쩌다 동선에 겹쳐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X'번 환자가 되어 'Y'번 환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 우리는 그 대가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친구들의 얼굴은 점점 잊혀가고, 1년 전부터 세웠던 여행 계획은 포기하며(혹은 취소당하며) 기분 좋아야 할 외식조차도 불안 속에 삼킨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알겠다. 역시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종잇장 같은 바닥 위에서 지나가고 굴러가고 던져지고 지켜져 왔다. 아주 위태롭게. 단지 '당연함'이라는 관성에 의해 그 감각을 잊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갑자기 이 당연함이라는 콩깍지가 벗겨지고 균열이 가버린 일상의 기반을 바라보자니, 불과 몇 달 전의 일상조차도 생경하게 느껴진다. 사무치게 그립고 돌아오지 않을까 두렵다.



바깥 생활을 줄이게 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한데, 신기하게도 야외에서 벌어지는 예전 방송 다시 보기가 유튜브 추천에 계속해서 뜬다. 별생각 없이 클릭해서 재생하고 나면 예외 없이 몇 초만에 금방 속상해진다. 시끌벅적했던 놀이공원의 모습,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동네 놀이터, 손님이 가득한 맛집과 시내 거리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니었던 일상들. 


이런 일상이 사람의 모습을 갖춘 무언가라면, 그가 돌아오자마자 껴안아주고 백만 번 입 맞출 것이다. 다시는 떠나지 못하게 손을 꼭 붙잡고 매일 고맙다고, 내일도 잘 부탁한다고 말할 것이다. 오늘 뭔가 불안하거나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물어보고 나의 일상이 행복할 수 있도록, 불행했더라도 금방 회복될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돌볼 것이다.



분명 언젠가는 돌아올 모습이지만, 이왕 돌아올 거라면 좀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 과거의 그 장면들, 과거의 나보다 다음 달에 잡힌 여행과 내일의 내가 더 그리울 수 있도록. 


믿고,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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