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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Aug 23. 2018

잠깐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불안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 오늘 난 집에서 영화를 볼 거야. 보고 싶은 영화를 정하고 모자에 슬리퍼 차림으로 마트에 간다. 감자칩과 캔맥주를 사 와서 영상을 재생한다. 얼마나 됐을까, 손이 자동으로 폰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두 화면을 번갈아보며 눈과 손이 바쁘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화면이 등장하면, 급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또 뭐하지?


사놓고 쌓아두기만 했던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고, 묵혀둔 주제로 글이라도 써야 할 것 같고, 자기계발, 산책, 운동 등등... 뭔가 내일이 오기 전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약속과 일정으로 가득한 날에는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뿌듯했다.


불안은 애증이었다. 나에게 피해만 주는 녀석은 아니었다. 덕분에 움직였다. 덕분에 낯선 감각을 느껴보기도 했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좀 질린다. 제 아무리 효과가 좋은 스테로이드 연고라도 바를수록 둔감해지듯, 발린 곳의 피부가 죽어버리듯, 나만의 감각들이 옅어져 죽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 또한 불안.



Photo by Joshua Newton on Unsplash



다만 하나, 다들 겪는다는 사실. 나도 불안해라고 실토하는 사람에게서 불안 대신 위안을 얻는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응답한다. ‘너도 그렇구나.’


그제서야 쉬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스스로의 외침이 목소리를 얻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같은 말들도 떠오른다.



충만함을 안고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잠들 마음이 없는가 보다.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며 애써 잠을 청해 본다. 내일도 어쨌든 일하러 가야 하니까.



* Main Image : Photo by BRDNK Producti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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