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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슴 Jun 09. 2019

편견과 차별에 대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운동이 되면 나는 긴장한다. 긴장은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내 차례가 되어 ‘나 필라테스 다녀.’ 하면 이런 반응들을 예상할 수 있다.


비싸기만 하고 효과 없지 않아?
너도 그런 쫙 달라붙는 옷 입어? 보기 싫겠다ㅋㅋ
강사 예쁘냐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필라테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도 들어서 이제는 유형을 나눌 수 있다. 효용과 가성비에 의문을 제기하는 유형, 자신의 납작한 성적 편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유형, 그리고 그냥 비웃는 경우. 운동 효과는 내가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몸 상태와 지금 상태를 비교해서 대답해준다. 대놓고 성적 대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려준다. 그렇지만 그저 웃기만 하는 사람에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애초에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웃는 사람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그 외 어떠한 의문에도 나는 부연할 준비가 되어있다. '필라테스는 원래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운동이거든?’ '매번 기구도 사용하는데 회당 3만 원 꼴이면 가성비 좋은 거지.’ ‘그냥 트레이너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서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아.’ '코어운동이라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고 현대인들에게 취약한 척추에 힘을 실어줄 수 있어서 좋아.’ …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설명해줘야 하냐, 니가 좀 찾아봐라.’ ‘이렇게 말해도 어차피 안 할 거잖아?’ 결국 그렇게 망한다. 설명도 포기해버리고 싶고 우리의 관계고 나발이고 다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만 남는다.





    내가 맞닥뜨렸던 질문과 비슷한 의문을 빌리 엘리어트(이하 '빌리') 또한 마주해야 했다. 내 상황은 감히 비교하기 민망하다.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말, 가정 상황이 경제적으로 힘든데 예술이나 한다는 말을 듣는다. 어린아이에게 발레를 가르치면 미래를 망칠 것이라는, 선생님을 향한 형의 대사도 절망적이다.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다. 절친한 친구도 성 정체성을 의심하는 질문을 던진다.


    상황은 빌리가 움츠릴 것을 요구했으나 열정만큼은 빌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화장실에 숨어서 발레 연습한다. 좁은 화장실에서 돌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이동식 도서관에서 도둑질까지 하며 책을 구해본다. 걸으면서도 발레 삼매경이다. 연습하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몇 달을 걸쳐 꾸준하다. 이런 상황에서 발레 수업을 받다가 체육관에 찾아온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라도 온몸이 굳었을 것 같다. 나를 부정하는 눈빛. 내 모든 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눈빛.


    빌리는 증명 하려 했다. 대놓고 비웃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웨인 슬립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언급한다. 그런 빌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이었다. 가정에서조차 내가 나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 빌리는 한을 풀어내려는 듯, 신들린 채 동네를 춤추고 무용하며 돌아다닌다. 그러다 담벼락에 부딪히고 꿈을 포기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시선이 빌리가 빨리 포기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빌리는 결국 성공했다. 일정하게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추측해봤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려면 뛰어난 능력이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을까.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빌리를 가로막은 벽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허물어야 한다. 춤 한 번 춰보라며 테이블 위에 들어 올려놓는 폭력이 사라진 사회를 꿈꾼다. 내가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분위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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