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다래끼가 나서 고생하던 지난 주말, 한 쪽 눈에만 렌즈를 끼고 DDP에서 열린 장 줄리앙 회고전에 다녀왔다.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장 줄리앙의 방대한 작업물을 모은 회고전은, 동시대에 활동하는 작가는 각 작품의 가치에 관계없이 그 작업량만으로도 전시를 풍부하게 꾸며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장 줄리앙은 유쾌하고 밝은 스타일 속에 현대 사회에 대한 냉소와 다크한 메시지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화책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고, 사회비판적인 저널 삽화에 삽입되기도 하는 등 형식의 변주가 아주 광범위하다.
전시 구성은 장 줄리앙이 영감을 기록하는 노트를 보여주면서 시작, 이것이 영상이 되고 잡지 일러스트가 되고, 가구, 화병, 오브제, 수많은 브랜드들과의 콜라보 작업물이 되면서 변주하다가 마지막엔 순수 회화 작품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한 전시로서, 미디어아트 전시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직접 작가가 전시장 벽에 드로잉 한 부분이라든가, 영상 촬영에 쓰였던 키네틱 소품들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 등은 프로젝터가 열일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보다 더 진정성있는 재미로 다가왔다.
특히 한 쪽 벽을 거울로 만든 공간에 장줄리앙이 자주 그리는 인물을 입체로 세워두고 마음껏 찍게 둔 인증샷 존이 재미로서는 최고였다. 전시에서 이렇게 깔깔대면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있나 싶다. 뿐만 아니라, 펜드로잉이 벽면을 가득 채운 공간, 상업 브랜드들과의 콜라보 제품 등등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전시를 즐기다 보면, 장 줄리앙의 순수 회화 작품으로 채운 마지막 섹션에 도달하게 된다. 발랄한 전시를 고요한 피날레로 장식한 느낌.
정리하자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기분 좋은 전시를 가고 싶다 + 인증샷도 마구마구 찍고싶다면 추천. 낮지 않은 입장료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굿즈들이 꽤 괜찮음, 근데 비쌈)
장 줄리앙 회고전
<그러면, 거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22. 10. 01 - 2023. 01.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