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마다

by 숨비소리

예전의 나는 '식물은 햇빛과 물로 광합성을 한다.'라는 과학적 상식만으로 식물을 키우려고 했다.

그래서 무조건 햇살 아래에 식물을 놓아두고는 열심히 물을 주었다.

당연히 식물은 살아남지 못했다.


'얘는 며칠에 한 번씩 물 주면 됩니다.'로는 식물을 키워낼 수 없다.

매일매일 흙의 상태, 날씨, 식물의 컨디션 등을 살펴야 한다.

2~3일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고 했더라도,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물을 주지 않아야 할 상태일 수도 있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사놓은 식물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요즘에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품종은 잘 모르지만 꽃이 파란색이라 '여름'이라고 이름 지은 아이가 하룻밤 사이에 꽃을 피웠다.

베란다에 두었다가 에어컨 근처 창가 자리로 옮겼더니 이 환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쑥쑥 자라나고 꽃을 피웠다.


꽃을 하도 떨어트려서 '삼천궁녀'라고 이름 지은 임파챈스도 에어컨 곁, 해가 그리 많이 들지 않는 자리로 옮기자 훨씬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책상 위에 두었던 향기 제라늄 '레몬이'는 햇빛 부족으로 웃자라는 듯해서 베란다에 내어두고 대신 분홍꽃을 피우는 제라늄 '분홍이'와 꽃이 장미를 닮은 제라늄 '장미'는 무더위에 지친 탓인지 잎이 말리는 듯해서 실내로 들여왔다.


분갈이에 열받아 꽃을 다 떨어트린 버베나 '까칠이'는 화분이 커서인지 흙이 잘 마르지 않는 듯해 에어컨 가까운 자리로 옮겨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장마철이라서 그럴까.


꽃이 나팔을 닮아 이름이 '김뿜뿜씨'인 만데빌라는 진딧물이 생겨버렸다.

원래 고무나무 진액이 있는 아이라 진딧물이 잘 생긴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속상하다.

살충제를 잔뜩 뿌리고 남은 진딧물들은 면봉으로 닦아주었다.

꽃잎을 피해서 뿌린다고 조심했는데도 하얗게 피어나던 예쁜 꽃잎에 갈색 얼룩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진딧물부터 없애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다음번 물 주는 날에는 잎부터 한 번 깨끗하게 씻어줘야겠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다육이 '어머님'은 쑥쑥 잘 자라고 있다.

아들내미가 실험 후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학교에서 데리고 온 고추도 잘 크고 있다.

햄스터 간식에서 빼내어 심어놓은 해바라기는 희한한 방향으로 구불구불 자라난다.

택배로 올 때부터 거의 다 죽어가던 향설초는 결국 떠나보내게 되었다.


직사광선을 좋아하는 애, 간접광이 필요한 애, 물을 좋아하는 애, 물이 많으면 싫어하는 애, 어지간하면 잘 버티면서 커주는 애, 예민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온몸으로 지금 이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표현하는 애.

화분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모두가 다르다.

좋아하는 환경, 예민함, 느긋함, 표현하는 방법, 그 모든 것이.


그저 초록 잎사귀로 광합성을 하며 꽃을 피우는 게 전부인 식물도 저렇게 제각각 개성이 넘친다.

그러니 숨 쉬고 살아 움직이는 인간은 어떠할까.

표준, 평균이라는 잣대로 모든 걸 재단해 버리기엔 인간의 잘려나가는 부분들이 너무 아깝다.

그 잘려나간 부분이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꽃일 수도 있을 텐데.


파랗게 피어난 여름이의 꽃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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