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강변의 무코리타>가 전하는 삶의 자세
“무코리타 – 일본 불교에서 시간 단위 중 하나로 1/30일, 약 48분. 최소 단위는 세즈나(찰나).”
– 영화 <강변의 무코리다> 中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말도 눈물도 없이, 그저 밥을 씹고 시간을 견디는 날들.
그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후의 시간은
예고 없이 과거형이 되어버린 관계 속에서,
그저 ‘살아 있는 채로 잃어버린’ 상태로 머무르게 만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조용한 시간이 바로 나만의 '무코리타'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무코리타’는 일본 불교에서 하루의 1/30, 약 48분을 뜻하는 단위라고 한다.
죽은 자가 이승과 저승 사이에 머문다고 전해지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시간을, 죽은 이가 아닌 남겨진 이들을 위한 것으로 그린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강변의 무코리타〉는
삶과 죽음, 애도와 회복 사이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변 어촌의 오징어젓갈 공장, 무코리타 하이츠라는 이름의 낡은 연립주택, 그리고 감정이 뚫린 채 살아가는 인물들.
그들은 어떤 극적인 사건 없이 하루하루를 조용히 통과한다.
어느날 야마다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나타난다.
그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통과할 만큼만, 아주 천천히 고통을 해체해 간다.
시마다는 자식을 잃었지만 텃밭 채소를 건네고,
욕실을 함께 쓰자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상실을 오래전에 통과해버린 사람처럼, 그 역시 무코리타 속에 머문다.
남편의 뼛조각을 목에 걸고 다니는 집주인 미나미,
죽어서야 쓸모가 있는 묘석을 파는 방문판매 미조구치와 그의 아들.
외계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그 누구도 '치유'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속도로 무너지고, 살아가고, 버텨낸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무리하게 다가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정을 끝까지 듣지 않아도, 곁에 있기만 해도 된다고.
함께 머문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연대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는 언제나 조용하다.
카모메 식당, 안경,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그녀는 늘 말없는 사람들의 시간을 비춘다.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서사는 흘러가지 않고 스며든다.
그중에서도〈강변의 무코리타〉는 가장 죽음에 가까우면서도, 가장 삶을 깊이 응시하는 영화다.
삶이 고통으로 멈추더라도, 그 고통을 끌고 다시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삶은 거창하지 않다.
밥을 짓고, 욕실에서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민달팽이를 보며 엄마를 떠올리는 것.
그 모든 순간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떠나보낸 사람과의 마지막 인사 이후,
말없이 지나가던 시간들.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 채 밥만 씹던 그 날들.
무의미하고 공허했던 그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나만의 '무코리타'였다.
고통을 억지로 치유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살아 있으려 했던 시간.
그 시간은 허비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한,
정지된 여백이었다.
어쩌면 ‘무코리타’는
숫자로는 단지 48분이지만, 마음속에선 오랜 애도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전,
그 사이 어딘가에 잠시 머물러야만 했던 내 시간처럼.
이 영화는 그 여백을 존중한다.
감정의 방향을 재촉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죠”라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 한마디가, 때로는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토록 따뜻한 ‘머무름의 시간’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느낀다.
그 무코리타는,
오늘, 지금 내 안에도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화〈강변의 무코리타〉 中 나에게 명대사
공장 사장님 : 그렇게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면 또 다음 달이 오고 그러다 내년이 오고 순식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지.
야마다 :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공장 사장님 : 응, 있지. 있고말고. 하지만 그 의미는 10년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매일 꾸준히’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그 의미를 알려면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해.
야마다 : 죽은 후의 영혼은 어디로 가나요?
상담원 : 저⋯ 이건 상담원으로서가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주셨으면 하는데요.
전 어릴 때 하늘을 나는 금붕어를 보고 했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잠시 공중을 부유하다가 어느샌가 하늘 높이 헤엄쳐 가는⋯ 그런 금붕어가 보였어요. 세월이 흐른 후에 그건 분명히 영혼이었겠구나, 하고 확신했답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확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