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가둔 새장
사람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부학적으로 가슴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철저하게 갇힌 곳이다.
심장과 폐. 우리 몸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연약하며, 잠시도 멈춰서는 안 되는 이 기관들은
좌우 열두 쌍, 총 스물네 개의 갈비뼈가 만든 단단한 구조물 안에 놓여 있다.
의학에서는 이 구조를 <흉곽(Thoracic Cage)>, 즉 ‘가슴 우리’라고 부른다.
등 뒤의 흉추, 옆을 감싸는 갈비뼈, 그리고 앞쪽의 흉골이 서로 관절을 이루며
마치 새장(Cage)처럼 닫힌 형태로 생명을 보호한다
하지만 갈비뼈는 단순한 뼈가 아니다.
갈비뼈의 앞쪽은 딱딱한 뼈가 아닌 ‘연골(Costal Cartilage)’로 이어져 있다.
이 말랑한 연골 덕분에 뼈는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위·앞·옆으로 미세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 유연성 덕분에 폐는 순간적으로 최대 두 배 이상까지 부풀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 구조를 알면 알수록 인간의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는 단단한 보호막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숨을 쉬게 하기 위한 여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나는 이러닝 회사의 기획자로, 마케터로, 또 관리자로 살았다.
성과를 증명하고, 논리를 세우고, 빠르게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그 전장에서
‘감정’은 가장 먼저 제외되는 항목이었다. 그럴수록 내 갈비뼈는 더 단단하게 굳어갔다.
날 선 질문이 쏟아지는 회의실에서,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보고서 앞에서,
나는 내 안의 뜨거운 것들—억울함, 열망, 혹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흐트러져 나오지 못하도록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사실은 말한다.
갈비뼈의 진짜 핵심은 ‘차단’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우리가 숨을 깊이 들이쉴 때, 갈비뼈는 비록 1~3cm 정도지만 연골과 관절을 이용해 확실하게 벌어지며 폐가 충분히 팽창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이 미세한 움직임이 없다면 인간은 정상적인 호흡조차 유지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숨 참는 법’만 연습해 왔다는 사실을.
조직 안에서 내 역할을 지키기 위해 갈비뼈를 스스로 더 단단히 조여왔던 시간들.
그 단단함이 나를 지켜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내 꿈과 감정은 제대로 숨 한 번 쉬지 못하고 질식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흥미로운 구조는 아래쪽의 <부유늑골(Floating Ribs)>이다.
11번과 12번 갈비뼈는 등 뒤 척추에서 시작되었으되,
끝내 가슴 앞쪽으로 닫히지 않고 근육 속에 열린 채로 머문다.
얼핏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뼈처럼 보이지만,
이 닫히지 않은 틈이 있기에 우리는 딱딱한 뼛 속에서도 몸을 깊이 숙이고 유연하게 비틀 수 있다.
불완전함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움직임의 자유가 생기는 셈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삶은, 이 부유늑골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거대한 조직(흉골)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이제 나는 덜렁거리는 뼈처럼 불안하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안전한 방어막은 사라졌고, 심장은 맨몸으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 비로소 깊게 숨을 쉴 수 있다.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채,
내 폐가 원하는 만큼,
내 심장이 뛰고 싶은 만큼 마음껏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이제 나는 스스로 채웠던 가슴의 빗장을 푼다.
단단한 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내 안의 문장들이 새장 문을 열고 날아갈 시간이다.
“갈비뼈는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열림과 닫힘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하고, 숨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