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향 May 20. 2023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가 (2)

<My Transformation Game> 후속편 2

<#2>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가] (변형후속편2)






본질을 꿰뚫는 질문은 그 사람도 꿰뚫어버리나보다. 나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다. 잠에서 깨어나도 깬 것이 아니고,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나름 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나였다. 그러나 나의 이 미칠듯한 ‘바쁨’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라는 질문 앞에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만났다. 열심히 공장을 돌렸는데, 생산라인 끝에는 아무런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장을 돌린 결과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면, 그 공장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가동되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초단위로 나에게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였냐고 묻고 또 물었다. 






질문의 힘, 질문하면 답한다라 하지 않았던가. 집요하게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았냐’는 내 질문에, 결국 내 마음 깊은 바다 속 내가 답했다. 




습(習)’





‘습’이었다. 내 몸과 마음에 깃들어 있는 습이었다. 나는 20대 대학교를 서울로 올라가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용돈을 조금 보태주셨지만 사실 턱없이 부족한 삶이었다. 월세 조금 내고 마트에서 먹을 거 사고나면 없었다. 그래서 각종 아르바이트들을 해야했다. 나는 그렇게 20대 초부터 내 생계를 내가 걱정하고 책임졌다. 그렇게 ‘열심히’ 바쁘게 살며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뤘고, 선물같은 첫 아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고, 애도 낳았지만 나 역시 여전히 애였다. 대학교만 나왔지, 사회생활은 걸음마인 애였다. 나는 그 시절 그렇게 첫 애도 키우면서 나도 키워야 했다. 





말이 쉽지, 애도 키우면서 직업인으로서 나를 키우는 삶은 ‘전쟁’이었다. 하루 24시간 아이 쫓아다니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다가, 애가 잠자는 틈만 나면 일을 했다. 한 번은 2시간 강의가 들어왔는데, 그 일을 해내 보려고, 아기띠 하고 앉아서 PPT를 만들기도 하고, 당시는 강사로서도 베이비였기 때문에 내가 강의할 내용을 통암기 해야 겨우 해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냉장고에 강의안과 그 대사들을 모두 적어놓고, 애랑 놀아주면서 오가면서 외우기도 했다. 뭘 보면서 강의 준비를 하지 못하니까 핸드폰으로 내가 강의할 내용을 녹음해서 라디오처럼 거실에 틀어놓고 계속 듣기도 했다. 정말 지나고 나서 말하니 추억이 되었지, 그 시절 그 젊음으로서만 할 수 있는 패기였다. 어떻게 보면 간절함이었다. 엄마로서 아이 곁에도 머물러 주고 싶지만, 대학교까지 나와 공부한 청년 나 자신도 놓고 싶지 않았던 간절함이었다. 






그 시절엔 ‘들어오는 일들’이면 다 좋았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경험해야 했던  값진 일들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하나 정도 있던 코칭과 강의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담을 수록 감사하게 앵콜이 늘어났고, 소개에 소개로 이어져 조금씩 수가 늘어났다. 내가 그렇게 늘어난 수의 일들을 해낼 수 있을 무렵, 첫째도 어느 정도 자라 있었다. 그렇게 우린 같이 컸다. 첫째가 어느 정도 컸을 때 3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가게 되었다. 일을 자꾸 하다보니, 어떤 지식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다. 그렇게 나는 또 아이도 키우며, 대학원도 다니며, 원래 하고 있던 코칭과 강의까지 하는 저글링의 대가가 되었다. 아, 그 시절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 많은 걸 해냈었는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그 때 난 어떻게 보면 행복했다.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걸 공부하고 있었고, 젊었기에 체력도 좋았다. 그렇게 여차여차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을 무렵, 얼마 되지 않아 둘째가 찾아왔다. 





아이가 어린 이 시절 엄마들이 왜 힘든가, 너무나 간단하다. 아이들도 키우며 우리 자신도 키워야 하니까. 나도 아직 내 삶을 잘 모르겠고,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은데, 아이도 키워야 하니까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랐던, 그리고 여전히 모자란 시절인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늘 들어오는 일들을 가급적 거절하지 않고 해냈고, 그 일들마다 최선을 다하며 했기에 나 자신을 태웠다. 그래, 나는 그 10여년 세월 동안 항상 바빴다. 






그런 나에게 샤인킴 3개월 5kg 감량 프로젝트에서 만난 ‘10% 남기기’라는 말은 고속도로를 120, 130 밟으며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익숙한 사람에게 80, 100으로 정주행하며 50분마다 휴게소에 들러서 쉬었다 가라는 것처럼 낯선 것이었다. 어쩌면 그런 화두를 주지 않았다면 내가 120, 130 밟으며, 멈춤 없이 달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다, 이게 살 좀 빼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살들은 나에게 ‘니가 미친듯이 달리던 삶을 좀 멈추어야 빠질거지롱’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쳇. 흥칫뿡. 






습.





습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남길 기력 없이 바쁘게 산 것은 오랜 세월 습이었구나. 못해도 10년 넘게 몸에 베인 습관이구나란 걸 알아차리고 나니 괜스레 슬펐다. 내가 애잔했다. 살아남고 싶었다. 육아도 처음이었고, 30대 청년인 나도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고,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다 새롭게 마주하고 개척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직업으로 삼고자한 ‘전문코치’로서의 길은 더 황무지였다. 앞서 가고 있는 선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이 직업 자체가 어떤 활동 모습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그림도 흐릿했다. 하지만 난 코칭이 그저 좋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이 일로 먹고 살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멈추지 않았다. 나는 두 아들의 엄마로서의 나 자신도 좋아했지만, 나는 ‘전문코치’로서의 나 자신도 좋았고, 그런 코치로서의 나를 살아남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렇게 한바탕 인생의 과업인 육아와 함께 내 직업의 생존을 마치고 났으면, 이젠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던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 도착할 줄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바쁨이 습이 된 사람은 쉼이 낯설다. 쉼(이완)이 없는 사람은 항상 몸과 마음이 긴장되어 있다. 몸과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 있는 사람에겐 우울감이 스며든다. 우울감은 그 사람의 영혼의 SOS다. ‘나를 부디 살려줘.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거지’라는 내 자문(自問)은 내 영혼의 SOS에 대한 답신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결심의 신호였다. 가장 강력한 질문을 나에게 던짐으로써 미친듯이 달리는 것에 익숙한 차를 세웠다. 그 정도 질문이 아니면 서지 않을 그 차를. 그리고 갑작스럽게 멈춘 차에서 폴폴 올라오는 연기 그을림에 켁켁 거리며, 여긴 어디지라 묻고 있는 게 나였다. 나는 그토록 빠른 속도로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지란 생각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하며. 







멈추니 또 보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는가’란 질문은 일(work)에 연결된 돈(Money)이란 영역과 몸(Body)이란 영역을 끌어올렸다. 나는 가끔 열심히 강의해 놓고도 예를 들어 그 강사료가 입금이 됐는지 안 됐는지도 확인을 안했다. 남편이 나에게 ‘그래서, 자기는 월매출이 얼마야?’라고 물어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기도 했다. 매년 세금 낼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기도 했다. 돈에 대해 무지하고, 무지한 만큼 관리를 잘 못했던 것이다. 돈에 대해 잘 모르니 돈이 때때로 잘 흐르지 않았고, 그럼 또 불안한 마음에 일을 많이 했다. 뿐인가, 이런 패턴에 몸까지 끼어있었다. 기본적으로 일을 많이 바쁘게 최선을 다해 하니까 항상 어느 정도의 기본 텐션감이 몸에 있다. 긴장되고 쫓기는 듯한 몸의 자세로 있다. 몸은 긴장되고 쉬지 못하고 있는데, 일의 양은 많아서 의자에 계속 앉아 대다수 노트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몸은 순환되지 않고 붓고 근육은 사라지고 건강은 약화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하고, 일을 하는데, 돈은 관리가 되지 않고, 몸은 엉망이 되어간다는 것이. 그래서 결론적으로 빈 잔고와 엉망이 된 몸, 할 일이 많은 하루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데, 그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인 것이다. 






나는 이 연결고리, 악순환을 자기대화일지에 풀어서 그려놓고 무릎을 탁 쳤다. 이거구나. 내가 10% 남기기가 안 된 이유, 내가 살을 뺄 수 없었던 이유. 내가 매년 딱 한 가지 이룬다면 이거라고 세우고 해내려 해도 안 됐던 이유. 생각보다 뿌리깊은 악순환 고리들이 묶여있었던 것이다. 








충격은 몇 일 갔다. 그리곤 개운해졌다. 나는 다시 털고 일어났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내 삶의 뿌리깊은 악순환 고리를 발견했으니, 이제 그 고리를 신명나게 직면하고 끊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고리로 이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 악순환 고리 흐름을 째려봤다. 그리고 골라냈다. 나는 이 연결고리 중 돈(Money)을 먼저 건들여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가계부’를 써봐야지 하며 검색하다가 ‘원페이지 가계부’라는 것을 만났다. 가계부가 특허를 받았다라는 점과 이걸 소개하는 ‘윤영애’ 대표님의 영상 속 자신감을 보고, 바로 이 책을 구매했고, 가계부 ‘입문반’ 온라인 교육을 신청했다. 







그렇게 나는 내 악순환을 끊는 문을 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성일:2023-05-07




*다음이야기: 순살의 시대: 돈과 세게 직면하다 (변형후속편3-완결)

https://brunch.co.kr/@coachheeso/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