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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Feb 07. 2023

내가 너였다면, 나라도 그랬을거야.

타인의 신발을 신는 일의 전제 조건에 대하여

내가 너였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I would have done the same if I were you)


나의 정신과 레지던트 생활은 미네소타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따뜻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첫 수련 생활이었다. 교수님들과 레지던트 선배들은 미국 병원 경험이라고는 학생 때 한 달 조금 넘게 참관을 했던 것이 전부였던, 의대생보다 훨씬 일 못하는 외국 의대 출신 레지던트였던 나를 끊임없이 다독여주었고, 배움의 길로 인도했다. 분에 넘치는 수련 환경이었지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아내의 직장때문에 뉴욕으로 이직을 결심해야만 했다.  

미국에서의 레지던트 생활은 미네소타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됐다(출처: Livability.com)

한국 생활에 오래 익숙해졌던 나에게, 이직 결심 그 자체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이직에 대해 교수님들, 동료들에게 내 결정을 전하는 일이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내게, 이유를 불문하고 수련받는 병원을 바꾼다는 것은 '배신'처럼 느껴졌다. 병원 입장에서는 내가 떠난 빈자리를 누군가로 메꾸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충원을 하지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내 몫의 당직까지 서야 한다. 그렇게 고민고민 끝에,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이었다. 

내가 너였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이직 후에도 직장 상사, 동료, 친구들에게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 말이, 커리어의 고비고비마다, 그리고 굵직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단순히 공감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에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있는데, 인지적 공감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말 아닌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 흘려주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정서적 공감이라면, 인지적 공감이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이다. 인지적으로 '나'를 '타인'의 자리에 놓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생활의 걸음마기나 다름없던 레지던트 시절에는 이 말이 마냥 감동적이기만 했다. 하지만 미국 생활에 대한 환상(aka 미국병)이 어느 정도 깨지고, 차츰 미국 생활의 짬밥이 늘어가면서는, 조금씩 이 말이 가능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사회가 가동하는 용량의 차이였다. 


미네소타의 시골에 위치한 병원에서는,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아마 최대 가동할 수 있는 만큼의 60-70퍼센트 정도로 병원이 돌아갔던 것 같다. 따라서, 내가 없어도 동료들에게 돌아갈 내 몫의 일이 크지 않았다. 처음 아빠가 되었을 때, 출산 휴가를 2주 써도 전혀 눈치 보일 일이 없는 구조였다. 심지어 내가 떠난 후에, 수련부장 교수님은 지원자들이 있었음에도, 내 자리에 추가적으로 레지던트를 뽑지 않았다(물론 그만큼 동료들이 어느 정도는 희생해야 했고,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뉴욕에서의 병원 생활은 훨씬 열악했다 (출처: USA Today)

뉴욕으로 온 후에는 모든 게 달랐다. 레지던트 인원도 두 배정도 많았지만, 담당하는 병원도 세 병원이나 됐다. 당직 일정도 미네소타의 두 배는 되었다. 그리고 당직을 설 때의 업무 강도도 훨씬 고됐다. 따라서, 레지던트들끼리 나눠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았다. 아무리 좋게 봐도 한도 용량의 8-90퍼센트로 달리는 구조였다. 부모들은 출산휴가를 쓸 때 눈치를 봐야만 했고, 레지던트가 사정이 생겨서 일을 그만둘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체 인력을 구했다. 나도 그렇게 빈자리가 났기 때문에 뉴욕대 레지던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은 한도 용량의 120퍼센트 이상으로 달리는 사회라는 생각을 한다. 레지던트 한 명이 나가면, 다른 동기는 죽어난다. 동기가 도망갔다고 하면, 내 앞날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내가 너였다면, 나라도 도망갔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군자에 가까울 것이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한국사회의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죽겠다'에서 시작한다. 이 말을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로만 바꿀 수 있어도 굉장히 많은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문제의 시작은 '모든 사람이 너무나 힘든 사회'에 있는 게 아닐까? 내 신발도 찾아 신기 힘든 사회에서 남의 신발을 신어볼 여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두 배, 세배의 찬사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이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 꽃이 자라는 환경을 고쳐야 한다”

내가 책에서 말한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걷는 사회'는 이상향이 아니라 생각한다. 단지, 내가 발붙이고 있는 사회가 내 신발은 확실히 챙길 수 있는 정도의 확신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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