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씨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하여
사실 그동안 제가 중독 정신의학 전문의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사회에 먼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한정된 미디어와의 대화에서 중독에만 대화가 치중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서의 중독 문제를 기사들로 접하면서, 이제는 중독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견해를 좀 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유아인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이 정도 수준의 마약 복용 소식을 들으면, 아마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아, 약물 중독 치료가 필요하겠구나' 일 거예요.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우리 사회 전반의 높은 자살률을 반영하는 현상이듯, 연예인들의 마약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가는 마약의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들일뿐입니다. 지금은 마치 남양유업회장의 손녀나 유아인처럼 부유한 유명인사들만 마약을 하는 것처럼 착시가 생길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약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퍼지게 될 겁니다.
얼마 전, 14살 중학생이 SNS로 마약을 구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요. 중독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바로 '접근성'입니다. 평범한 중학생이 SNS로 마약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 현실에서, 평소 우울감과 불안, 절망감이 만연한 청소년, 청년층, 그리고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 마약이 들불처럼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약물 과복용을 통한 자살도 증가할 것이 우려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골든 타임'이 바로 지금입니다. 더 늦으면 안 됩니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도, 전국에 겨우 두 군데 존재하는 마약 중독 치료보호기관에 대한 올해 예산(4억)은 동결했습니다. 예방이나 법적 단속도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와 재활에 투자하지 않는 이상 마약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약물 중독은 평생에 걸쳐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만성 질환입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요. 이미 마약상들을 때려잡는 70-90년대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이 얼마나 참담하게 실패했는지는 미국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 잘 보여줍니다. <수리남>에서 타국의 영토까지 마음대로 침범하며 멋짐을 뽐내는 DEA도 속수무책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헐리우드 배우 중 하나인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10년 이상의 시간을 약물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재활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감옥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결정적으로 2001년, 가석방 상태에서 다시 마약에 취한 상태로 체포된 후, 감옥 대신 재활 치료를 명령받았고, 2003년부터 마약을 끊었다고 합니다. 당장 유아인 씨가 출소하면 치료받을 병원이 서울에 딱 한 곳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제대로 된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을까요.
중독 문제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개인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당장은 속 시원하고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료를 받고 재활을 해야 할 당사자들을 음지에 숨게 만들고, 중독 문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약물 중독 문제가 제대로 치료되었을 때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또 공헌을 할 수 있는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간) 유아인 씨가 반드시 재활의 과정을 거쳐 재기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덧. 그리고 창난젓으로는 중독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사 참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실제로 본인이 중독을 벗어나는 데에 버거킹 햄버거 외에도, 심리치료, 12단계 프로그램(자조 모임), 그리고 명상 등이 중요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