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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Mar 20. 2023

<더 글로리>와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후기

그래서 내가 맞고 사나 봐요


<더 글로리>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이모님은 그렇게 동은에게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한다. 굉장히 친숙한 장면이었다. 실제로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그렇게 자기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대개 자기도 모르게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믿고 살아간다. 이런 현상을 사회 심리학자들은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Just world belief)' 혹은 '정의로운 세상 오류(Just world fallacy)'라 명명했다.(1)

“그래서 내가 맞고 사나봐요”라고 이모님은 웃으며 푸념한다(출처:넷플릭스)

이런 오류는 비단 피해자들이 자신을 탓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 피해자를 바라볼 때에도 이 렌즈로 피해자들을 바라본다. 가령, 실험 참가자들에게 피해자가 강간당하는 시나리오, 가정 폭력을 당하는 시나리오, 심지어 가난, 질병과 같은 시나리오를 주어도 참가자들은 피해자 (혹은 고통을 받는 당사자)를 깎아내리거나 탓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리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성은 더 강해진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을 관찰하는 입장(혹은 방관하는 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불편함(혹은 죄책감)을 덜게 된다.(2)


실제로 하도영이 처음 박연진의 악행을 직면했을 때 던졌던 첫마디 또한, “문 선생이 뭘 잘못했어?"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박연진은 태연하게 대답한다. "뭘 잘 못해야 돼?" 나는 이 장면이 너무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문선생이 뭘 잘못했어?” 하도영은 묻는다(출처:넷플릭스)

‘트라우마'란 그리스어 '상처' 혹은 '부상'을 뜻하는 말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많은 경우, 몸에 흉터를 남긴다. 어떤 흉터는 평생 지워지지 않아서, 동은이 흉터를 가리기 위해 긴팔 긴바지만 입듯이, 스스로를 감추며 살아간다.


완벽한 환타지에 가까운 드라마 속에서도 유독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장면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자퇴를 한 후, 동은이 체육관을 다시 찾아와서 가해자 집단에게 '꿈이 뭐냐'라고 묻는 장면과 20년 가까이 지나, 다시 동은이 체육관을 찾아와서 피해자들과 재회하는 부분.

너무나 몽환적이었던 체육관에서의 재회(출처:넷플릭스)

내가 만난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의 가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주로 트라우마 사건의 상황을 (치료과정상 불가피하게) 복기할 때나, 현실에서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이 다시 가해자와 마주쳤을 때 언급되는 게 주였다. 가령, 직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한 여성 환자는 다시 가해자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고,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가해자들은 트라우마 이전과 큰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늘 회사를 떠나고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은 피해자들이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오히려 마음 졸이며,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에 오래 남을 <스물다섯, 스물하나> 엔딩 장면(출처:tvN)

나는 드라마에서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현실적인 사람이고, 현실에서 이루어질법한 마무리가 좋다. 같은 이유로, 작년 한 해 가장 인상 깊게 본 드라마였던 <스물다섯, 스물 하나>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분개할 때, 나는 마지막 회가 맘에 들었다. 물론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순수한 첫사랑이 드라마에서나마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어쩌면 예술작품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일지 모른다.


<더 글로리>를 보는 내내, 나는 간절히 동은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복수가 성공한다고 해도, 과거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과거의 가해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느끼기를,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스스로 움츠러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은을 응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대리만족을 위해서. 왜냐하면 내 좁은 진료실에서 들은 이야기들 속에서는 권선징악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으므로.


<참고문헌>

(1) Melvin J Lerner. The belief in a just world: A fundamental delusion, 9-30, 1980.

(2) Claudia Dalbert. Handbook of individual differences in social behavior 288, 29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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