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머리말 '만남' 코너 기고글
형이 뭐냐, 그냥 희수라고 불러.
처음 만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그를 형이라 부르자 그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처음에 그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기억나는 건, 우리가 서로를 참 많이도 아끼고 좋아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는 나에게 ‘휴식 같은 친구’였다. 자취를 하던 그의 방에서 20대의 셀 수 없이 많은 밤들을 보냈다. 하루가 멀다시피 술자리가 있었던 새내기 시절부터,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생이 된 후, 그리고 학부를 졸업하고 뒤늦게 진학한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닐 당시까지, 마음이 힘들 때면 내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은 바로 희수의 자취방이었다. 그렇게 그의 집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힘든 마음이 그나마 가라앉곤 했다.
희수는 불꽃같은 친구였다. 어떤 일에 매진하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자기 자신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자신을 태워 가면서도 주변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 한, 속 깊은 친구였다. 그래서 그 옆의 온기가 그리워서, 나는 그토록 그의 곁을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을 위해 늘 스스로를 태웠기 때문이었을까. 갓 서른이 된 그의 몸에서 커다란 암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그가 암을 진단받던 날, 진료를 받고 걸어 나온 그에게 나는 차마 해줄 말을 찾지 못하고, 바닥만 쳐다봤다.
나는 이제 호스피스 들어왔는데, 여기도 전쟁이네. 잘 가라. 내 몫까지 행복해라.
그 후로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미국으로 떠나던 공항에서, 나의 이십 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희수는 핸드폰 너머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생일날 전해 들었던 비보는,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희수의 마지막 부탁처럼 느껴졌다. 기쁨으로 가득했던 우리 젊은 날의 추억들은 순식간에 빛바랜 기억이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희수의 빈자리를 확인해 주는 슬픈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희수를 잃은 후, 내 생일은 희수의 기일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순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애도’로 탈바꿈한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희수는 가끔 내 꿈에 나타난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불현듯 우리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저렸다. 한때 애도 연구가들은 애도가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으로 이어지는 순차적 과정이라 믿었다. 이 이론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지만, 이후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이 애도의 단계는 선형적이지 않으며, 사람마다 다름을 보고했다.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은 동의하겠지만, 애도는 파도와 같다. ‘수용’ 단계에 충분히 이른 요즈음은 대부분 잔잔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아무 예고 없이, 슬픔의 파도가 엄습하기도 한다. 그렇게 운전 중에 희수가 떠오른 날에는, 나는 달리던 차를 잠시 멈춰 세우고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애도에 관한 흔한 오해가, 애도는 일시적인 과정, 마치 ‘여행’과 같다는 생각이다. 여행을 떠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다시 애도를 하기 전의 자리로 돌아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하지만, 고인과의 이별이 영원하듯, 애도 또한 실은 영원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애도란 여행보다는 ‘여정’에 가깝다. 어떤 것도 그 사람을 잃은 나를, 그 사람을 잃기 전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애도 과정은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애도의 다섯 단계 너머에는, 여섯 번째 단계가 존재한다. 바로 “의미(meaning)”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애도를 경험할 때, 수용을 넘어서 더 큰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희수가 떠난 이후로 내 이십 대의 많은 기억에 슬픔이 드리웠다. 지금도 내 생일날은 기쁨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날이다. 하지만 희수가 떠난 후에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경험한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자기 몫까지 행복하라고 했던 희수의 당부는, 그를 잃은 후의 새로운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면, 희수를 만나러 가려한다. 가서 우리 20대의 어느 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동안 쌓인 마음의 짐들도 다 사라질 것만 같다. 보고 싶다, 희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