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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Jun 07. 2023

'언제나 친절함을 택하라'

영화/소설 <원더> 후기

옳음과 친절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If you have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and being kind, choose being kind).

아이가 차에서 듣는 오디오 북 <원더>를 들으면서 울컥한 적이 많았다. 주인공 어거스트는 선천적 희귀성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태어난 후 27번의 수술을 겪어야 했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남들과는 (많이)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어거스트가 태어난 후, 그의 엄마는 동화책 작가로서의 꿈을 중단하고 홈스쿨링을 통해 초등학교 졸업할 나이까지 아이를 가르쳤다. 그리고 어거스트의 부모는 이제 어거스트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중학교에 어거스트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이 시점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원래 돋보이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무리와 섞일 수 없는 거야(You can't blend in when you were born to stand out.)" 첫 등교날 누나의 말


아이가 듣는 오디오 북을 틈틈이 듣는 것이 전부였으므로, 소설의 내용들은 나에게 부분적으로 비어있었다. 그래서 주말에 아이가 영화화된 <원더>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내심 반가웠다. 그렇게 만난 영화는 긴 소설을 축약한 한계 때문인지 군데군데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줄리아 로버츠와 오웬 윌슨도 반가웠고.

너무나 반가웠던 두 사람, 줄리아 로버츠와 오웬 윌슨.

우리는 어디까지 '다름'을 다르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가. 사실 이 영화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거스트의 장애는 사실상 외형적인 것(그의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다름은 장애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외모의 차이일 수도 있고, 인종, 문화적, 사회경제적 배경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거스트는 자기의 외모를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겠죠.
- 교장 선생님의 말


영화에서 어거스트에게 자발적으로, 가장 진심을 담아 다가간 사람은 갈색 피부의 서머라는 여자아이였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좋은 친구인 잭윌도 부유한 집 아이들로 찬 뉴욕시의 사립학교에서 경제적 이유로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아이였다. 아마 자신이 주류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혹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이들이 자신을 다르게 대할 때의 기분을 알았기 때문에) 어거스트를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혼자 점심을 먹는 어거스트에게 먼저 다가간 서머(나의 최애 캐릭터)

소설과 영화를 통해, 예술 작품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공감을 잘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소설책을 읽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대답하면서도 너무 뻔한/엉성한 대답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가 많았다. <원더>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잘 쓰인 소설책이 공감 연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후, 장애를 가진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가족 분위기 속에서 남들보다 빨리 성숙한 어거스트의 누나인 올리비아의 시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빠듯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집 아이들과 학교를 다니는 잭 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어거스트, 또 미군이었던 아버지를 어릴적 잃은 섬머가 바라본 시점을 그림으로써, 다른 등장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서사를 풍성하게 담을 수 있었다. 이보다 좋은 공감 연습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원더>는 아이들에게 '친절하라'라고 가르친다" (출처: Newsela)

그렇게 여러번 오디오 북을 들었음에도 아이는 영화가 시작될 때 어거스트의 얼굴을 보고 무섭다며 눈을 잠시 가렸다. 하지만 이내 손을 내리고는 끝까지 즐겁게 영화를 시청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모로서 다짐한 것이 몇 가지 있다. 1) '최고의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기 2)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기 3) 아이에게 '누구처럼 돼라'라고 주입시키지 말기.


영화를 본 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아이가 어거스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서머 같은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다른 아이들이 어거스트를 만지면 전염병이 돈다고 손을 씻는 놀이를 할 때에 유일하게 먼저 어거스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친구가 되어준 서머 같은 아이가 되어달라고. 그렇게 처음으로 내가 만든 나만의 규칙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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