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미술, 그런 것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이 엄마한테 미술 전공을 권유하셨어. 엄마도 미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조금 솔깃하긴 했지. 근데 그때 당시에 엄마 집이 빚은 없었지만 미술을 전공시킬 만큼 그리 풍족하진 않았어. 당연히 외할머니는 허락하지 않으셨지. 엄마도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했어.
엄마 그림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지. 그런데 성인 이후에 만나는 모든 후회의 순간들에 계속 미술이 따라오는 거야. 취업이 안 되는 순간, 돌아이 상사를 만나는 순간, 연애에 실패한 순간,
모든 순간들에 미술을 하지 못해 내 인생이 여기까지 라고.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어서 미술을 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외할머니를 탓했다.
아니 대관절 거지 같은 상사와 미술을 하지 못한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니.?!
엄마가 좀 스스로를 치유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그때 더 강력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고
도전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거야. 결론적으로 '덜' 하고 싶었던 거지. 간절함이 간절한 표현을 만드는 데, 엄만 그냥 덜 간절했던 거야.
그러고 외할머니를 탓했지. 선택 앞에서 주저하는 초라한 스스로를 직면하는 것보다
외할머니를 탓하는 게 훨씬 쉬웠거든.
챠챠, 누구에게나 후회하는 수많은 순간이 온다. 그리고 누굴 탓하는 건 아주 쉽지. 후회하는 모든 순간마다 잘못 선택한 자신이 부끄럽고 미워서 우린 때로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해. 그래야 내 맘이 좀 편해지거든.
그런데 계속 다른 걸 탓하는 건 엄마가 조금 더 살아보니 별 의미가 없어. '그때 여대 가지 말걸.
그 전공 택하지 말걸.
엄마 때문이야.'
'내가 그때 미술을 했으면,
이런 직장엔 안 다녔을 거라고.
이런 돌아이 상사는 안 만났을 거라고.
그럼 이런 남자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라고 하는 건 별로 앞으로를 살아가는 데 의미가 없다고.
그럼 뭘 알아야 할까.
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네가 할 수 있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거나,
이후의 선택에서는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또 하나의 착각.
다른 선택을 했기에 지금 그걸 하지 못한다는 건
아주 어리석은 편견이야.
아니 그림은 꼭 전공해야 그리는 거라고 누가 정해 놓았단 말이니?
경제 포스팅은 전문가만 쓰라는 법도 없고,
경력단절된 아줌마는 작가가 되지 못한다는 건
내가 정한 거지 그 누구도 '정의'하지 않았단다.
세상의 모든 단어는 '상상'이며,
그 '개념'은 얼마든지 네 안에서 수정 가능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항상 후회의 순간이 올 때네가 누군가를 탓하고 있다면,
한 번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이 필요해.
너의 선택이 부끄럽고 미숙했다는 걸 인정하면서 말이야.
잘못된 선택보다 더 최악인 건 두루뭉술한 선택이다.
완전히 잘못된 선택은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있지만
두루뭉술한 선택은 비난을 피할 구멍이 있어서 남을 탓하기 더욱 쉽거든.
그래서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약간의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해보는 걸 추천해. 확실한 선택과 약간의 실패를 경험하고 다른 걸 탓하지 말자.
약간의 실패는 엄마는 언제나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약간의 성공도 맛볼 수 있어. 그걸 빨리 할수록 좋아. 그러면 어른이 돼서 '큰 실패'를 줄일 수 있어. 엄마처럼 늦게 하면 '진짜 어른'이 되는 속도도 더뎌지거든.
또 말이 길어졌네. 지나치게 실패하지 않는 선택에 집착하지 마렴. 시행착오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성장의 기회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 아빠는 너의 편이야.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렴.